세상에는 없어져도 아쉬워할 사람이 별로 없는 직업이 있습니다. 빚 독촉 전화가 그렇습니다. 돈을 갚으라고 전화하는 사람도 괴롭고, 그 전화를 받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기업들은 이 일을 자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미납 고지서나 카드 연체, 병원비, 임대료 문제로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남성은 ‘이브(Eve)’라는 이름의 AI 채권추심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브는 그의 이름과 과거 집주인에게 빚졌던 금액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빚이 이미 다 갚아진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남성은 AI가 곧 사람 상담원에게 넘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브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일부러 이상한 농담과 역할극까지 시도했습니다. AI는 잠시 따라오다가 결국 사람 상담원에게 전화를 넘겼고, 상담원은 시스템을 확인한 뒤 잔액이 0달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우스운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 일은 앞으로 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과 임금 정체로 연체 채무가 늘고 있습니다. 돈을 받아내야 하는 회사들은 더 많은 전화를 더 싸게 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AI 채권추심원은 잠도 자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동시에 수천 통의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석은 AI 채권추심 시장이 앞으로 10년 안에 16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이왕 사람도 하기 싫고, 받는 사람도 싫어하는 일이라면 AI가 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채권추심 업무는 직업 만족도가 매우 낮은 분야로 꼽힙니다. 전화를 받는 사람들도 채권추심원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이 산업은 자동화의 가장 쉬운 표적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AI가 먼저 차지한 일자리는 ‘멋진 직업’이 아니라 ‘가장 저주받은 직업’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AI 채권추심원은 단순히 녹음된 안내 음성이 아닙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말투를 바꾸고, 대화 내용을 분석하고, 과거 통화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의 성향을 추정합니다. 어떤 회사는 채무자가 실직, 질병, 가족의 죽음 같은 취약한 상황을 언급하면 사람 상담원에게 넘기도록 설계했다고 말합니다. 반면 어떤 회사는 AI가 그런 대화까지 계속 처리합니다. 심지어 일부 AI 시스템은 이전 대화를 분석해 ‘심리적 프로필’을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위험이 생깁니다. 채권추심에는 법적 제한이 있습니다. 밤늦게 반복적으로 전화하거나, 가족에게 빚 사실을 알리거나, 위협적인 말을 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그런데 AI가 잘못된 사람에게 빚 정보를 말하거나, 상황을 잘못 이해해 부적절한 압박을 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 상담원의 실수도 문제지만, AI의 실수는 규모가 다릅니다. 한 명이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의 실수가 수천 명에게 동시에 반복될 수 있습니다.

더 미묘한 문제도 있습니다. 많은 AI 채권추심원이 여성의 목소리와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브, 테일러, 에밀리, 렉시 같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여성 음성이 사람들에게 더 잘 먹힌다는 이유입니다. 표정이 있는 아바타를 붙이고, 친근한 말투를 입히고, 상대가 거절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목적은 분명합니다. 돈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압박 방식입니다. 과거의 채권추심원이 거칠고 무례해서 문제였다면, AI 채권추심원은 너무 친절해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화내지 않고, 지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계속 전화를 겁니다. 예의 바른 압박, 부드러운 추적, 친절한 독촉이 자동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보다 AI에게 돈 문제를 털어놓는 것이 덜 부끄럽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민감한 문제를 인간보다 챗봇에게 더 쉽게 말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빚을 진 사람 입장에서는 차갑고 짜증 섞인 상담원보다 차분한 AI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치심이 줄어드는 대신, 감시와 설득의 기술은 더 정교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빚을 독촉하는 쪽만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빚을 진 사람들도 AI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채권자와 통화하기 전에 ChatGPT에게 대화 스크립트를 부탁하고, 변명보다 나은 설명을 준비하고, 당황하지 않기 위한 문장을 만들어 둡니다. 앞으로는 AI 채권추심원이 전화를 걸고, 채무자의 AI 비서가 대신 응답하는 장면도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인간의 빚 문제를 두 AI가 협상하는 시대입니다.

이 기사의 핵심은 “AI가 또 하나의 직업을 빼앗는다”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싫어하던 일을 AI가 대신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은 정말 덜 잔인해지는가. 아니면 더 조용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피하기 어려운 형태로 바뀌는가.

AI 채권추심원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욕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덜 폭력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 가장 무서운 압박은 고함이 아니라, 끝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반복되는 한 문장입니다.

“오늘 카드로 결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좌이체로 해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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