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 27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연단에 선 사람은 뜻밖에도 랜디 와인가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 교원노조인 미국교사연맹(AFT)을 이끄는 인물입니다. 와인가튼은 이날 학생들이 “기술 속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와 인공지능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연설의 제목은 “기기는 내려놓고, 눈은 들고, 손은 움직이자(Devices Down, Eyes Up, Hands-On)”였습니다.
이 발언이 흥미로운 이유는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있습니다. AFT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앤트로픽과 손잡고 전국 AI 교육 아카데미를 출범시켰습니다. 수천만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교사들이 AI를 수업과 업무에 활용하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기술 기업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교실의 AI 활용을 준비하던 조직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잠깐 멈추자”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와인가튼의 요구는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특히 3학년 미만 학생에게는 온라인 시험을 포함한 화면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자고 했습니다. 장애 학생 지원처럼 명백한 교육적 필요가 있을 때만 예외를 두자는 것입니다. 또 디지털 튜터 같은 학생 대면형 AI 도구는 초등학교에서 배제하고, 인간 관계를 흉내 내는 소셜 컴패니언 챗봇은 16세 미만 학생에게 금지하자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자신이 AI 금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크롬북을 불태우자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술의 이익은 살리되, 해악은 줄이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반기술 선언이 아니라 속도와 범위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 도입은 “일단 넣고 보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느 나이에, 어떤 조건에서”라는 질문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흐름은 노조 지도부의 갑작스러운 변심만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학교 지급 노트북과 태블릿이 아이들의 주의를 흩뜨리고, 읽기와 사회성을 약화시킨다는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가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화면 수업에서 자녀를 빼겠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교실이 화면을 원하는 아이와 원하지 않는 아이로 갈라진다면, 교사는 무엇을 기준으로 수업해야 할까요. 와인가튼이 느낀 위기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미국 보건 당국도 비슷한 방향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2026년 5월 미국 보건복지부와 공중보건의무감실은 아동·청소년의 과도한 화면 사용이 수면, 학업, 신체 활동, 대면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학교에는 종이 교과서, 손글씨 과제, 실물 활동을 늘리라는 권고도 포함됐습니다.
세계적 흐름도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가 한때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던 교실의 화면화를 다시 점검하고 있습니다. 인쇄 교과서, 손글씨, 종이 시험, 몸을 쓰는 활동이 낡은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을 지탱하는 기본 장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한 반성담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AFT 자신도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기술 기업과 손잡고 AI 교사 연수를 추진했던 바로 그 조직이 이제 빅테크의 교실 진입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술 기업과의 파트너십은 여전히 유효한데, 동시에 학교에 더 많은 기술을 밀어 넣는 빅테크의 역할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선일 수도 있고, 뒤늦은 학습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 교육 현장의 불안이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적 맥락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AI 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언어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교원노조는 교육부 축소, 연구 예산 동결, 공교육 약화를 비판하며 기술 도입의 속도와 책임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논쟁은 단순히 태블릿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가, 기술 기업인가 교사인가, 효율인가 발달인가, 경쟁력인가 아이의 삶인가를 둘러싼 싸움입니다.
한국의 학부모와 교사는 이 장면을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AI 디지털교과서와 학교 AI 도입을 이미 빠른 속도로 추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AI를 가장 먼저 교실에 들이고, 교사 연수까지 적극적으로 준비하던 미국의 대표적 교원노조가 이제 속도 조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AI를 쓰지 말자”는 신호가 아닙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실험을 너무 쉽게 시작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결국 핵심은 기술을 빼느냐 넣느냐가 아닙니다. 기기를 내려놓은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입니다. 화면을 줄인다고 저절로 좋은 교육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 자리에 책 읽기, 손으로 쓰기, 몸으로 만들기, 친구와 말하기, 교사와 눈 맞추기가 들어와야 합니다. 기술이 빠진 빈자리가 다시 문제집과 경쟁으로 채워진다면, 그것 역시 교육의 회복은 아닙니다.
와인가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무엇을 멈추자는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요구여야 한다고.
맞습니다. 기술을 걷어내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그 자리에 교육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미국 교원노조의 이번 선언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실에 무엇을 더 넣을 것인가만 묻고 있지 않은가. 정작 아이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시간, 손, 눈, 관계, 집중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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