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미국 브라운 대학교 캠퍼스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홉 명이 부상을 입었고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자 중 한 명인 엘라 쿡Ella Cook은 불과 며칠 전 경제학과의 로베르토 세라노Roberto Serrano 교수를 찾아가 지도교수가 되어달라고 청했던 학생이었습니다. 34년간 강단에 서 온 세라노 교수는 그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규칙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트라우마로 캠퍼스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는 수리경제학 중간고사를 시험장이 아닌 집에서 치르는 오픈북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결정은 순전히 선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선의가, 아이비리그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AI 부정행위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
86명이 응시한 시험에서 40명이 만점을 받았습니다. 전체 평균은 96점으로, 예년의 65점에서 80점 사이라는 통상적 분포를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시험이 예년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채점 과정에서 세라노 교수의 조교들은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특정 문제에는 훨씬 간결한 증명법이 존재함에도, 다수의 답안지가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우회적인 논리 전개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조교들이 같은 문제를 챗GPT에 직접 입력해 보았을 때, 바로 그 부자연스러운 증명이 그대로 출력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세라노 교수는 시험을 무효화하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기말시험을 대면으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하고, 만약 그 분포가 중간고사와 유사하게 나온다면 중간고사 성적을 인정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버튼 하나만 눌러서 AI가 대신하게 했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무의미한 존재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있습니까.” 그날 강의실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그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 대부분은 아마 그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27명이 강의를 철회했고, 그중 22명이 만점자였습니다. 대면으로 치러진 기말시험에는 59명만 응시했으며 19명이 낙제했습니다. 평균은 48점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세라노 교수 자신이 말한 대로, “부정행위의 경험적 증거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침묵이라는 두 번째 문제
이 사건에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부정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풍경입니다. 세라노 교수는 자신이 정리한 증거를 학장과 부총장에게 보냈지만 처음에는 아무 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학사규정위원회로 사안을 격상시킨 뒤에야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는 짧은 답변을 받았을 뿐, 부총장은 지금까지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세라노 교수가 던진 말은 곱씹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이야말로 최악의 대응입니다.” 대학이라는 조직은 흔히 새로운 위협 앞에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합니다. 하나는 규정을 정교하게 다듬어 기술을 따라잡으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발생할 평판의 손상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입니다. 브라운이 보여준 것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롭게도 프린스턴 대학교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1893년 학생들의 청원으로 시작되어 133년간 이어져 온 무감독 시험 전통, 이른바 아너 코드(honor code)를 폐지하고 올해 7월부터 모든 시험실에 감독관을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버드 졸업반 학생의 47퍼센트가 부정행위를 시인했다는 최근 조사 결과와 함께 놓고 보면, 이는 특정 대학의 일탈이 아니라 고등교육 전체가 맞닥뜨린 구조적 균열임을 보여줍니다.
기술이 아니라 동기의 문제
이 사건을 AI 탐지 기술의 미비나 시험 형식의 허점으로 환원하는 것은 손쉬운 해석이지만 본질을 비껴갑니다. 세라노 교수 자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이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일이라면, 왜 여러분에게 브라운의 학위가 필요합니까.” 이 질문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 개개인을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학위라는 것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세라노 교수가 인용한 스탠퍼드 학생들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최근 보도는 이 물음을 더 날카롭게 만듭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이유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력서에 적을 이름을 얻기 위해서라는 냉소적 태도가 학생 문화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세라노 교수는 이런 태도를 “순진한 분석”이라 일축했습니다. 브라운이라는 이름값은 그 이름을 딴 졸업생들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지, 이름 자체가 영원히 가치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시장은 결국 알아차립니다.
여기서 저는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과 다시 마주치게 됩니다. 동기는 기법으로 주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 형식을 바꾸고, 부정행위 탐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감독관을 늘리는 일은 모두 증상에 대한 대응이지 원인에 대한 대응이 아닙니다.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이유, 즉 목적의식과 야망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어떤 정교한 제도도 결국 우회당합니다. 반대로 그런 목적의식을 가진 학생에게는애초에 AI에게 증명을 대신 시킬 이유 자체가 없습니다. 세라노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던진 질문, “왜 이곳에 있습니까”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겨누고 있습니다.
무엇을 잃고 있는가
세라노 교수의 결론은 개별 사건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노동자들이 그저 버튼을 눌러 AI에게 일을 대신 시키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어리석어지기를 선택한 세상을 새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34년간 학생을 가르쳐 온 이가 목격한 변화의 속도에 대한 정직한 두려움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가 다음 학기부터 내린 결정들, 즉 주간 과제의 평가 비중을 없애고 테이크홈 시험을 영구히 폐지하기로 한 것은 패배 선언에 가깝습니다. “테이크홈 시험이라는 개념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유혹에 굴복하기가 너무 쉬워졌습니다.” 트라우마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제도가, 배려할 수 없는 시대의 증거로 폐기되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해야 할 것은 AI를 어떻게 탐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배움의 이유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입니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감독관을 아무리 늘려도 교실은 이미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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