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임기가 10여일 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을 상대로 유례없는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선거 불복과 연방 의사당 난입 사태를 주도하고 방조한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을 설파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의사당 폭력 사태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아니라 극우 테러리스트 집단인 안티파(Antifa)가 면밀히 계획해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안티파 음모론은 의사당이 무법천지가 됐을 당시 급속히 부각되었다. 겉잡을 수 없이 사태가 번지고 비난 여론이 들끓을 당시 그 책임 소재를 트럼프 지자들에서 극우 테러 집단으로 돌리는 데 주력했다. 선거 불복과 선동, 폭력을 낳은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도 이용된 것이다.

NBC 뉴스 캡처

거짓과 음모는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경로로 전파되며,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엠아티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가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대선 결과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예정되었던 2021년 1월 6일, 오후 2시 30분에 과격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했다. 1시간 뒤인 3시 30분, 우익 음모 이론가 린 우드(Lin Wood)가 극우 성향 SNS인 팔러(Parler)에 사진 2개를 올리고, 일치하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하나는 의사당의 현장 사진이고, 또 하나는 안티파 블로그(phillyantifa.or) 사진으로, 의사당 난입자들을 안티파 추종자로 여겨지게 한 것이다..

우드의 SNS 포스트는 5천6백만 뷰(view)와 5만6천의 좋아요를 기록했고, 음모론의 씨앗이 뿌려졌다. 린 우드는 한 시간 뒤에 또 다른 사진을 올렸다.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전세계에 판매하는 게티이미지(Getty Images)의 수석 사진작가가 의사당 발코니에서 폭도를 내려다보는 사진으로, 이 사람의 존재가 폭력 사태가 미리 준비된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이것도 급속히 퍼졌다.

이후 음모론은 주류 SNS로 진입했다. 안티파 개입 가짜뉴스는 트위터에서 수만번 리트윗되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오후 4시 39분, 이번에는 트럼프 열혈 지지자인 TV 전도사 마크 번즈(Mark Burns) 목사가 의사당 난입 인물 가운데 하나인 유명 큐아넌(QAnon) 추종자 제이크 안젤리(Jake Angeli)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아닌 안티파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도 가담했다. 그는 번즈의 트윗을 450만 그의 팔로워에게 퍼다 날랐다

음모론은 이제 페이스북으로 번졌다. 여러 트럼프 지지그룹들이 의사당 난입자들과 안티파 추종자들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해 안티파와 연관시킬 수 있는 문신이나 의상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거꾸로 쓴 사람들이 실제로는 안티파 추종자라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난무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이런 음모론에 언론과 정치인들까지 가담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애리조나주 폴 고사(Paul Gosar) 하원의원은 한 극우 활동가의 포스팅을 리트윗했다. 난입자들 가운데 일부가 무릎 보호대를 차고 있는 것을 안티파의 특징이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오후 7시 45분 전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페일린(Sarah Palin)이 폭스뉴스(Fox News)에 등장해 안티파 추종자들이 폭도들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이 가짜뉴스는 폭스뉴스 진행자 로라 인그래엄(Laura Ingraham)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보수 매체인 워싱턴 타임스는 이런 가짜뉴스를 사실인 것처럼 전했고, 얼굴인식 업체가 폭도들의 사진으로 안티파를 입증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까지 나왔다.

난입 사태가 끝난 그날 저녁 늦은 시각 맷 가에츠(Matt Gaetz) 공화당 연방 하원은 의사당에서 폭력 사태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선 것이 아니었다며 안티파를 거세게 비난했다. 그 근거로 워싱턴 타임스를 인용했다. 다음날 아침 모 브룩스(Mo Brooks) 하원의원 역시 트위터에 안티파가 폭력을 사주해 의사당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트윗은 불과 몇시간 안에 2만5천건 이상 리트윗을 기록하며 급격히 확산했다.

MIT Technology Review 캡처

미디어 정보업체 지그널랩스(Zignal labs)는 데이터 분석 결과 의사당 난입 사건이 발생한 이후 채 24시간도 안돼 모두 411,099건의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온라인을 뒤덮었다고 밝혔다. 지그랩스의 그래프는 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근거 없는 거짓 주장이 온라인을 통해 변형되고 계속 부풀려지며 음모를 낳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소셜 네트워크는 물론 주류 미디어, 그리고 정치권까지 파고들게 된 것이다.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의사당 난입은 안티파가 아니라 트럼프 지지 세력이었다며 자신이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관련된 인물 대부분은 트위터 계정이 정지되고, 페이스북 내용이 삭제되었지만 그 흔적은 온라인에 여전히 남아있다. 첨단 과학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디지털 시대의 확증편향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번 시태는 교훈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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