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때 민주주의의 선도 국가였습니다. 동경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요? 연방 의사당이 극우 집단에 의해 짓밟힌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사망 선고 같은 상징적 사건으로 여겨질 만 합니다. 미국은 자괴감에 빠졌고, 세계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만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주요 정책을 결정합니다. 물론 박빙의 승부는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결과의 승복을 통해, 그리고 포용을 통해 민주주의는 오히려 성숙해집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나타난 겁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선거 불복에 앞장선 대통령, 이를 신봉하고 따르는 극우 집단, 음모론을 추종하고 맹신하는 이들이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해 미국 사회를 위협하게 된 것으로 봐야겠지요.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술이 지배하는 테크(Tech)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터넷이 보편화 하면서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혁명적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아랍의 봄’을 이끌었고, 탐욕스런 금융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선도했으며, 민주화를 외치는 홍콩 시민들의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광장 SNS는 이내 시공간을 넘어선 집단 따돌림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을 낳았고, 이념과 정치색에 따라 끼리끼리 뭉치고 편을 가르며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게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미국만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죠. 적대적 단일 대오 세력을 형성해 광화문과 서초동의 거리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한 것도 SNS의 영향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트위터 블로그 캡처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습니다. 폭력의 추가 선동에 대한 위험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에도 트럼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거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앞으로 거대한 목소리를 낼 것이고, 새 대통령 취임식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비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계속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큐어넌’(QAnon)은 극우 음모론을 펼치는 트럼프 지지 집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들은 민주당과 연결된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언론과 산업을 장악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악의 축인 그들은 아동 성매매자들이자 사탄 숭배자들입니다. 여기에 맞서 싸워 이길 구세주가 바로 트럼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사람이 있냐구요? 미국 공영방송 NPR과 리서치 업체 입소스(Ipsos)가 2020년 12월 말 미국 성인 1,11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9%가 ‘딥 스테이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모론은 어느 시대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거품은 기반을 잃고 금방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무엇이 음모론을 세력화 하고,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을까요? 중세 시대 마녀 사냥의 광기는 종교적 절대 권력의 횡포와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기득권층이 던져주는 정보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뉴스와 정보가 사통팔달 열려있는 시대입니다. 더구나 미국은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세계 최대 강대국입니다. 그럼에도 팩트와 상식, 과학이 음모론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인종, 지역, 정치적 지향에 따른 미국 사회의 갈등 양상은 뿌리 깊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유독 이게 폭발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과 SNS의 그늘진 구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방적 신념을 배경으로 한쪽으로만 치닫는 정보 습득, 이게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의 진화, 절대선과 절대악 이분법으로 고착화 하는 사고, 점조직처럼 번지는 세력화, 급기야 투사로 변신하는 광기… 이게 인터넷과 SNS의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정치적 신념은 때로 집착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생각, 같은 정보에 갇혀 살 때 사고의 유연성은 사라지고 이성은 마비됩니다. 견해를 달리하면 적으로 간주합니다. 상식은 허물어지고 음모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기술 사회, 인터넷과 SNS는 앞으로 더욱 더 우리 사회를 이끌고 지배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지배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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