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봅니다. 화면에는 사과 그림이 떠 있고, 그 옆에 ‘먹다’라는 동작이 천천히 펼쳐집니다. 변화를 불편해하는 자폐 스펙트럼 아이에게 그림은 흔들리지 않고 또박또박 그 자리에 머뭅니다. 옆자리의 다른 아이도 같은 화면을 봅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그 아이에게는 같은 단어가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지치지 않는 반복입니다.

교육부가 이번 새 학기 처음으로 특수교육 현장에 보급한 ‘특수교육 인공지능·디지털 교육자료’의 한 장면입니다. 대상은 7만5000명. 특수교육 대상 학생 가운데 60퍼센트가 넘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겨냥했습니다. 자폐성 장애 학생에게는 풍부한 시각 단서를, 지적장애 학생에게는 실생활 중심의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내년에는 초·중등 국어와 수학으로, 2028년에는 고등학교까지 확대된다고 합니다.

같은 기술이 어떤 교실에서는 외면받고 어떤 교실에서는 반가운 도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 전 정부가 1조4000억 원을 들인 AI 디지털교과서가 일반 교실에서는 8.1퍼센트의 활용률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특수교실은 다릅니다. 일반 교실에서 AI가 덧붙여진 액세서리였다면, 특수교실에서는 아이 한 명의 속도에 맞춰 지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드문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늦게 배우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기술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더 조심스러워져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특수교사의 57퍼센트가 개별화교육계획, 즉 IEP 작성에 AI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1년 전 39퍼센트에서 빠르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도움이 되는 지점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대형언어모델이 장애 당사자의 경험과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데이터로 훈련돼 왔다고 경고합니다. 그 결과 AI가 제시하는 ‘맞춤형’은 종종 다수자의 평균을 정교하게 잘라낸 것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가장 미세한 차이를 읽어야 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둔감한 맞춤이 될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위험은 어쩌면 그 다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AI가 특수교육 대상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경험적 자료를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어떤 학습 효과가 나타나는지, 단기적으로 어떤 행동 변화가 생기는지, 어떤 위험이 누적되는지를 충분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AI에 대한 과잉 의존이 일반 학생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각 반응하고, 반복해 주고, 감정적 마찰이 적은 도구일수록 아이는 사람보다 기계 쪽으로 더 쉽게 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경향이 어느 수준에서 교육적 도움이 되고, 어느 지점부터 발달을 가로막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특수교육에서 AI 활용은 다른 어느 교육 영역보다 더 엄격한 검증과 더 긴 관찰을 필요로 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효과를 앞당겨 확신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발달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한 번 굳어진 상호작용 방식이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리함이 곧 효과를 뜻하지는 않고, 반복 가능성이 곧 바람직함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더 큰 위험은 여기서 다시 현실의 문제와 만납니다. 특수교육은 본래 가장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교육입니다. 한 명의 교사가 한 명의 아이를 오래 바라보고, 아주 작은 변화까지 알아채고, 때로는 손을 잡고 곁을 지키는 시간 자체가 교육이었습니다. 태블릿이 그 시간의 일부를 덜어준다면, 교사는 더 깊은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예산이 부족하고 인력이 모자란 현장에서 태블릿은 지원을 늘리는 도구가 아니라 지원 축소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대시보드 위의 숫자와 기록은 사람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을 대신하지 못하는데도, 마치 대신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맞춤’이라는 말은 가장 절박한 약속처럼 들립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그 절박함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태블릿이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구가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 부모들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그림 일곱 장을 차분히 보여주는 동안에도, 아이 곁에 앉아 있는 존재는 여전히 사람이어야 합니다. 화면이 가르치고 사람이 머무는 교실.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만 이 기술은 교육이 됩니다.

오늘, 이 자료가 들어가는 한 특수학교 교실을 떠올려봅니다. 환하게 켜진 태블릿 곁에 어른의 무릎도 함께 닿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다음 풍경은, 바로 그 장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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