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입학 에세이는 본래 이상적인 장치처럼 보였다. 성적표와 시험 점수로는 드러나지 않는 한 학생의 고유한 경험, 삶의 결, 생각의 방향을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인간을 글이 말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생성 AI 시대에 이 장치는 뜻밖의 역설에 직면했다. 모두에게 열린 도구처럼 보였던 AI가 오히려 어떤 학생에게는 더 큰 불이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 매체 Inside Higher Ed는 코넬대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한 선별적 대학에 제출된 2020~2024년 입학 에세이 8만 1,663건을 분석했다. 결론은 간단하지 않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입학 에세이에 AI를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AI 사용 이후 에세이의 언어는 더 비슷해졌으며, 특히 저소득층과 불합격 학생 집단에서 그런 획일화가 두드러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라는 단순한 도덕 논쟁이 아니다. 더 냉정하게 보아야 할 문제는 이것이다. 같은 AI를 쓰더라도 누가 더 잘 쓰는가, 누가 더 좋은 조언을 함께 받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평가 과정에서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해석되는가.

고소득층 학생에게 AI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사설 입시 컨설턴트, 학교 카운슬러, 글쓰기 코치, 부모의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하고, AI는 그 위에 얹히는 보조 장치가 된다. 반면 저소득층 학생에게 AI는 부족한 지원을 대신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연구진도 저소득층 지원자가 AI를 더 많이 쓰는 이유를 “부족한 글쓰기 지원의 대체재”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문제는 AI가 언제나 좋은 대체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입학 에세이는 정보를 정리하는 글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결을 드러내야 하는 글이다. 그런데 AI는 대체로 매끄럽고, 안전하고, 익숙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문법은 고쳐주지만 상처의 모양까지 고쳐버리고, 문장은 유창해지지만 목소리는 평평해진다. 연구진은 생성 AI 등장 이후 에세이의 표면적 언어 특징이 서로 수렴하는 현상을 확인했고, 그 수렴이 저소득층과 불합격자 집단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것은 잔인한 역설이다. 입학 에세이는 원래 불리한 배경의 학생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를 주기 위해 존재했다. 그런데 AI가 그 이야기를 ‘그럴듯한 문장’으로 다듬는 순간, 오히려 그 학생의 고유성이 희석될 수 있다. 잘 쓰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그 학생을 더 평범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더 복잡한 문제는 평가자의 시선이다. 입학사정관은 글의 진정성, 개성, 맥락을 읽으려 한다. 하지만 AI가 개입한 글에서는 ‘잘 쓴 글’과 ‘빌려온 글’의 경계가 흐려진다. 고소득층 학생의 세련된 문장은 오랜 교육 자본의 결과로 읽힐 수 있지만, 저소득층 학생의 갑자기 매끄러운 문장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AI 사용 증가가 저소득층 학생의 예측 합격 가능성 하락과 더 강하게 관련된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연구는 AI 사용을 직접 신고받은 것이 아니라 통계적 탐지 방식으로 추정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문제 제기는 무겁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격차를 ‘접근성’의 문제로 이해해 왔다. 컴퓨터가 있느냐, 인터넷이 되느냐, 유료 서비스를 쓸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생성 AI 시대의 격차는 더 미묘하다. 이제 핵심은 접속 여부가 아니라 사용 능력, 해석 능력, 평가 맥락이다. 누구나 AI에 접근할 수 있어도, 누구나 같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연구진이 말한 “접근의 불평등에서 수익의 불평등으로의 이동”이다.  

따라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AI 사용자를 색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도 불완전하고, 교육적으로도 빈약한 대응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입학 에세이가 여전히 학생의 고유성을 평가하는 공정한 자료인가. AI가 개입한 문장을 어떤 기준으로 읽어야 하는가. 사교육과 컨설팅의 도움은 오랫동안 묵인하면서, AI의 도움만 부정행위처럼 다루는 것은 정당한가.

이 문제는 미국 대학 입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자기소개서, 수행평가, 탐구보고서, 세특 문장, 심지어 독후감까지 이미 같은 압력 안에 있다. 학생들은 AI를 쓰지 말라는 말을 듣지만, 동시에 더 매끄럽고 더 설득력 있는 결과물을 요구받는다. 학부모는 불안해서 AI를 찾고, 교사는 AI 냄새가 나는 문장을 경계하며, 학생은 자기 목소리와 기계의 문장 사이에서 점점 더 애매한 저자가 된다.

AI는 글쓰기의 문턱을 낮춘다. 이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문턱을 낮춘다고 곧바로 평등이 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모두가 같은 문장으로 들어오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평가자는 그 비슷한 문장들 사이에서 다시 익숙한 특권의 신호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입학 에세이의 위기는 AI가 학생 대신 글을 쓴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은 위기는, AI가 학생들의 다른 삶을 비슷한 문장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이 정말 읽어야 할 것은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생성 AI 시대의 입시는 바로 그 오래된 원칙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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