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미디어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정보 접근과 유통의 우월적 지위는 사라졌고, 매출은 곤두박질하고 있습니다. 방송도 그렇지만 신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들이 생산한 기사를 직접 접하는 사람들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구촌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디지털이 미디어 지형을 바꾸어 놓은 게 근본적 배경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1인 미디어 전성시대를 맞았습니다. SNS와 유투브가 여론을 움직입니다. 구글과 네이버가 미디어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뉴스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정파적이고,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기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더욱 커졌습니다. 품격의 추락은 신뢰의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1면 전체를 할애해 쓴 ‘미국의 사망자 수 10만명 육박, 헤아릴 수 없는 상실’(U.S Death Near 100,000, an Incalculable Loss)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즈 2020년 5월 24일자 코로나 부고 기사가 세계 언론의 뉴스로 등장했습니다. 사진이나 그래픽, 세세한 내용을 일절 배제한 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숨진 이들의 이름과 나이, 지역, 간략한 한 줄 스토리만을 깨알같이 빼곡하게 실었습니다.

“허만 보엠, 86세, 여행하기 좋아한 은퇴 건축가”, “리처드 패스맨, 94세, 초기 초음속 비행 시대의 로켓 엔지니어”, “아자데 킬릭, 69세, 두 번의 암 발병 생존자”, “루크 워코프, 33세,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끊임없는 열정”, “저메인 페로, 77세, 신혼 생활을 즐기지 못한 아내”, “마리온 크루거, 85세, 웃음이 많았던 할머니”…

뉴욕타임즈는 “이들이 단순히 사망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였다“면서 몇 명이 치료되고, 실업이 얼마나 늘었으며,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알리는 숫자로는 코로나19의 충격을 나타낼 수 없다.”며 기사를 내게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수많은 지역 신문 등의 부고 기사와 각종 정보를 온라인으로 검색하고 종합해 전체 10만명에 이르는 코로나 사망자의 1%인 1,000명의 이야기를 신문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신문에는 날짜 별 사망자 추이와 함께 그래픽으로 시각적 효과를 더했습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과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 현실을 알리는데 통계와 현상과 발표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망자 명단을 게재하는 방법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하고, 이들의 삶을 요약하며 인간애와 생명의 중요성을 자극했습니다. SNS나 유투브가 따라 하지 못할 미디어의 품격이 보여집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경향신문 2016년 10월 5일자 신문의 1면 “공생의 길 못 찾으면 공멸… 시간이 없다”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삼각김밥과 컵라면 사진, 라면 국물로 얼룩진 지면, 알바생의 낙서가 등장합니다. 불평등과 저출산, 청년 붕괴 등 한국 사회의 공멸 위기를 지적하고, 공동체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당위성을 부각한 기사로 기억에 남습니다.

종이 신문이 어렵기는 뉴욕타임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 구독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대신 돈 내고 온라인으로 보는 독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0년 1분기에만 58만명의 신규 디지털 독자가 생겼습니다. 종이 신문 구독자가 84만명인데 온라인 신문 구독자는 5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광고 매출 하락을 신규 독자로 상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의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미디어에 닥친 현실은 엄혹합니다. 전통과 명성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날로그적 기반을 디지털과 접목해 저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고, 빅데이터를 기사에 끌어들이고,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역할이 놓여있습니다. 이념적 정파적 대립과 양극화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올곧음과 진중함, 그리고 긴 호흡의 목소리를 품격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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