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와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도, 기술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은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분야는 AI가 범접하기 가장 어려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 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사건들이 올 한 해 유독 눈에 띄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호주의 온라인 IT 과학전문매체 ‘뉴아틀라스(newatlas.com)’에서는, 2016년을 AI기술이 창의적인 예술 분야에 혁신적으로 적용된 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특집기사를 올렸습니다(2016 : The year AI got creative)

이 특집기사에 따르면, 실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놀라운 흐름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2016년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특히 AI 혁신의 신기원이 이루어진 해라고 명명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기사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올 한 해 충격적으로 다가온 예술 분야에서의 AI 기술의 혁신 사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AI 시트콤

2016년 초에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 시트콤 드라마, <프렌즈, Friends>의 후속편 시나리오를 AI가 만들어내 화제를 모았습니다. 미국의 만화 작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앤디 허드는 매우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머신 러닝 알고리즘 신경망을 이용해 프렌즈의 대본을 학습시킨 후, AI가 <프렌즈>의 후속편을 쓰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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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쓴 대본은 조금만 수정을 가해도 기존의 프렌즈 에피소드에 버금가는 재미를 주는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앤디 허드는, “그냥 컴퓨터 자판만 누르면 됩니다. 아주 수준 높은 시트콤 대본이 나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나는 기계학습의 가능성에 대해 어린 아이와 같은 매혹을 느꼈고, 유머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동기를 부여 받았습니다. AI가 만들어낸 몇몇 스크립트는 현재 일부 TV시트콤보다 실제로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고 밝혔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횡설수설과 기이한 장면 연출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이 모여 이상하리만큼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시청자가 볼 만한 내용으로 만들어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를 이용해서 사람이 상상해내지 못하는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대본을 AI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AI 무비 트레일러

미국 영화제작사인 ‘20세기폭스’가 AI를 다룬 SF 스릴러, <모건, Morgan>의 트레일러를, IBM의 AI 프로그램인 왓슨(Waston)으로 제작했습니다. <모건>은 자가학습 능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 결국 통제 불능이 된다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왓슨은 이 영화의 인상적이고 특징적인 장면을 스스로 뽑아내 편집한 트레일러(예고편)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위해 왓슨은 100여 편의 공포영화와 트레일러를 직접 분석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어떤 요소를 트레일러에 극대화했는지를 스스로 학습한 다음, <모건>에 맞는 10여 개의 장면을 6분만에 추려냈다고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물론 음악, 음향효과까지 뽑아내 편집해냈습니다.

왓슨이 만들어낸 트레일러는, 완벽한 수준은 아니어서 부분적으로 사람의 손을 거쳐 마무리되어야 했지만,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수행할 경우 시일이 꽤 오래 걸리는 작업을 단지 몇 분만에 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여러 매체에서 조명했습니다. AI 왓슨이 만들어낸, <모건>의 트레일러는 2016년 AI가 제작한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AI 공포영화

지난 8월에는 AI 공포영화, <임파서블 씽스, Impossible Things>를 제작하려는 클라우드 펀딩(Kickstarter Campaign)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천 개의 성공적인 공포영화를 분석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학습하여 데이터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의 신경망을 활용하여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학습을 마친 AI가 스토리의 배경과 줄거리를 생성하면 인간 극작가가 대본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예고편을 만들어 아이디어를 과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클라우드 펀딩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팀은 두 명의 할리우드 제작사와 제휴를 맺었으며, 이 영화는 2017년 초에 촬영될 예정이어서 내년 말에는 AI가 만들어낸 최초의 장편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AI 단편영화

2016년에는 <선스프링, Sunspring>이라는 단편 영화가 출현했습니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AI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영화제작자 오스카 샤프와 인공지능 연구원 로스 굿윈은 일반적인 텍스트 인식 AI 알고리즘을 채택한 다음 1980년대와 1990년대의 SF 시나리오를 분석했습니다. 유명한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하여 <엑스 파일>과 같은 TV 드라마를 바탕으로 기계학습을 통해 시나리오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이 대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편 영화가 바로 <선스프링>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혼란스러운 캐릭터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스토리 전개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AI 팝송

앞에서 주로 살핀 영화 분야에서는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6년에 가장 성공적인 예술 분야의 AI의 가능성은 소니 CSL 연구소에서 제작한 팝송이었습니다. 소니의 AI 프로그램, ‘소니 플로우 머신 소프트웨어’는 13,000개가 넘는 다양한 인기곡을 바탕으로 음악을 학습한 다음,  “비틀즈풍의 곡을 만들라”와 같은 간단한 주문에도, 꽤나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바로 <아빠의 차, Daddy’s Car>입니다. 실제로 소니의 AI 플로우 머신은 멜로디와 하모니를 담당하고 전체 편곡과 작사는 프랑스 출신 브누아 카레가 맡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한 인공지능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중 코러스와 코드 진행, 역회전 음향 등은 물론 비틀즈풍의 팝 감각과 실험성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소니는 2017년에 완성된 AI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소니 외에도 구글에서도 마젠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음악을 어떻게 생성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것”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구글 마젠타 뮤직, Google Magenta music>입니다. 90초의 짧은 멜로디인 이 음악은 드럼과 배열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피아노 멜로디와 진행은 알고리즘이 담당했습니다.

AI 크리스마스 캐롤

캐나다 토론토대학팀은 ‘신경 가라오케, neural karaoke’라는 이름의 AI 크리스마스 캐롤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00시간이 넘는 크리스마스 음악에 신경 네트워크를 훈련시키면서 멜로디를 고안한 다음 자체 음악 트랙으로 전체를 구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특정 단어를 특정 이미지에 연결하기 위한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한 결과 마침내 수많은 크리스마스 이미지가 생성되었고 이 이미지에서 컴퓨터로 만든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경쾌한 캐롤이 만들어졌습니다.

AI가 만들어낸 크리스마스 캐롤은,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무엇인가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축하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가 만들어낼 수많은 음악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AI 소설

2016년에 AI가 예술계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은, AI의 단편소설 도전입니다. 일본 미래대학 히토시 마쯔바라 교수팀은 일본 단편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단편 작품을 인공지능이 분석하게 해서 단편소설을 쓰게 하는 프로젝트팀을 운영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쓴 단편,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는 호시 신이치상의 1차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이 소설의 결말은 호시 신이치의 작품 세계와 유사한 분위기를 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AI 예술품 경매

AI로 만들어낸 시각예술은 몇 년 동안에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2015년 구글 AI ‘딥드림’이라는 AI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품은 기계 예술을 주류에 편입시켰습니다. 구글은 딥드림이 만들어낸 29개 작품을 대상으로 경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매출 총액은 무려 9만 7,000 달러에 달했고, 단품 기준으로 최고가는 8,000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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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예술성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AI가 예술 분야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AI 시(詩)

2016년에 시인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카멜 앨리슨은, AI가 작성한 시와 산문을 수집하는 ’큐레이티드 AI(Curated  AI)’라는 사이트를 선보였습니다. 앨리슨은 190,000 단어의 어휘가 포함된 신경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진 기계 제작 시를 선보였습니다. ‘딥짐블(Deep Gimble)’이라 이름 붙인 이 인공지능은 1분이면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구글 역시 시의 처음과 마지막 문구를 부여해 주면, 이 사이에 들어갈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 AI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 팀은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AI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AI시스템에 중기 로맨스 소설을 데이터로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고 기분 좋으며 소름끼치는 시적 결과물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AI 예술잡지 편집

과연 AI에게 미적 취향을 훈련시킬 수 있을까요? 사진 전문 잡지(SNS플랫폼), 아이엠(EyeEm)은 2016년에 사진을 검토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대담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작자는 자신의 알고리즘을 교육하여 사진을 검사하고 그들이 정한 미적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등 아이엠 잡지 최신호를 AI에게 맡겼습니다.

그 결과 AI에 의해 완전히 큐레이팅된 잡지가 만들어져 팀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알고리즘은 방대한 아이엠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파고들었고 인간이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아이엠의 AI는 런던 출신 젊은 크리에이터를 발굴해냈다고 합니다.

이상에서 살핀 2016년, 예술 분야에 찾아온 인공지능(AI) 기술의 혁신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인간 고유 영역이라 자부하며 자신만만해 했던 바둑이라는 직관의 영역을 무참하게 점령한 알파고의 등장 이래, 2016년은 창의와 예술의 영역에서도 AI의 가공할 만한 가능성이 실제로 증명되고 확인되는 해였습니다. 아직까지 조야한 분야도 있고, 인간의 미적 영역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과연 언제까지 ‘예술’이 인간의 성역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예술작품과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을 과연 구별할 수 있을지, 만일 구별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인간임을, 혹은 인간다움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 중에서 아주 높은 수준에 위치한 영역입니다. 인공지능의 도전이 거셀수록 우리는 미적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자각하고 이를 치열하게 추구해야만 합니다. 기술 사회가 우리에게 던진 도전과 질문에 맞서서 ‘무엇이 아름다운 인간 정신의 발현인가’에 대해 궁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나아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몰려오는 기술의 쓰나미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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