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과 대화할 때 말만 듣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느끼며, 잠시 침묵하는 이유도 짐작합니다. 상대가 말을 마치기 전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들기도 합니다. 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반응을 끊임없이 읽고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AI와의 대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사람이 질문을 마치면 AI가 대답하고, 그 대답이 끝나야 다시 질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상대방이 생각에 잠겨 잠시 말을 멈춘 것인지, 이야기를 끝낸 것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0월 1일, 미국의 AI 기업 타부스(Tavus)가 공개한 그리핀(Griffin)은 바로 이 문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인공지능입니다. 회사는 이를 ‘인간 상호작용 모델(Human Interaction Model)’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핀은 영상통화를 하듯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합니다. 상대방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변화에 반응하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기도 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도중 상대가 끼어들면 자연스럽게 말을 멈추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침묵이 이어지면 그 의미를 판단해 적절한 순간에 다시 말을 건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실험 결과입니다. 회사가 실시한 실시간 영상통화 실험에서 참가자 54명 중 26명, 즉 48%가 1분 동안 대화한 상대를 실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짧은 대화와 제한된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므로 이를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AI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핀이 보여주는 변화는 단순히 AI가 더 사람처럼 보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질문을 명확하게 만들고, 적절한 명령어를 입력하고, 기계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기계가 인간의 대화 방식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 설명을 바꾸는 AI 교사, 고객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문제를 짐작하는 상담원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다만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위험도 생깁니다. 실제로 그리핀은 아직 안전성 검토를 위해 제한적으로만 공개되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대를 지나, 인간의 표정과 침묵까지 읽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질 것인가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기계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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