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들이 인공지능 도입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AI 전공을 신설하고,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유료 AI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학 홍보자료에는 ‘AI 선도대학’, ‘AI 혁신 캠퍼스’, ‘AI 융합교육’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등장합니다. 마치 AI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에 따라 대학의 미래가 결정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한 시대에 대학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최근 The Conversation에 실린 「대학들은 AI에 관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은 대학의 공적 사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는 기사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연구진은 캐나다의 주요 연구중심대학 15곳에서 추진하는 AI 관련 사업 953개를 분석했습니다. 대학들은 AI 연구, 창업 지원, 산업 협력, 교육과정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대학마다 추진 방식도 달랐습니다. 어떤 대학은 연구와 산업화를, 어떤 대학은 교육과 학습을, 또 다른 대학은 정책과 관리체계 구축을 우선했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953개 사업 가운데 교수자의 교육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은 91개, 약 9%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대학들은 AI로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에는 열심이었지만, AI 시대에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던 셈입니다. 물론 공개된 사업의 숫자가 실제 투자 규모나 교육 혁신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숫자는 대학들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대학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들은 AI 관련 학과를 만들고, 기업과 협약을 체결하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AI 활용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정작 강의실에서는 오래된 교육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교수는 지식을 설명하고, 학생은 그것을 받아 적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생들이 과제를 작성할 때 AI를 사용하고, 교수들이 그 과제가 AI로 작성되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정도입니다. 기술은 21세기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는데, 교육의 기본 구조는 지난 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교수들이 AI 사용법을 잘 모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AI가 학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작성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과제를 내야 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학습 성취를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AI를 활용해 강의자료를 만들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AI 시대의 교육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낡은 교육 방식을 AI로 더욱 효율적으로 반복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AI 전문인력 양성과 AI 리터러시 교육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AI 전공자를 양성하고 산업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공급하는 일은 대학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AI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기술의 한계와 위험을 인식하도록 교육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입니다. AI를 개발할 줄 아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과 AI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지 않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 구분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AI의 능력이 향상될수록 인간이 직접 수행해야 할 지적 노동의 범위는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대학이 오랜 시간 가르쳐온 지식과 기술 가운데 상당 부분은 AI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기존의 교육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AI 활용법 몇 가지를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과 평가체계까지 다시 설계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대학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은 단순히 노동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훈련기관이 아닙니다. 지식을 탐구하고, 기존의 통념을 의심하며,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곳입니다. 산업사회에서 이러한 능력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함께 길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AI가 지식의 습득과 활용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지식을 가르치는 것과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지나치게 쉽게 동일시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대학이 이러한 변화를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만 받아들일 가능성입니다. AI 학위과정과 자격증을 만들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 상용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일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학의 AI 혁신이 산업적 수요와 경제적 성과에만 종속된다면,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축소하는 셈입니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대체할수록 대학은 오히려 인간의 지적 자율성을 지키는 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대학과 교수자일지도 모릅니다. 교수들이 새로운 교육을 실험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원을 제공하고, 학문 분야별로 AI 시대의 교육 목표를 재정립하며, 평가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AI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벗어나, AI를 사용하더라도 학생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대학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교육적 전문성이 발휘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이번 연구는 모든 대학이 동일한 AI 발전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대학의 역사와 설립 목적, 교육적 사명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AI 경쟁에서 몇 번째로 앞서가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얼마나 충실하게 실현하느냐입니다. 이 지적은 대학의 경쟁력을 순위와 취업률, 연구비와 산업협력 실적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AI는 대학이 오랫동안 독점해온 지식의 전달과 인증이라는 기능을 빠르게 흔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대학에 닥친 위기이면서 동시에 대학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의 가치가 줄어들수록 지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들이 AI 도입 실적을 자랑하는 동안, 정작 대학 교육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학이 가장 앞선 대학은 아닙니다. AI가 무엇을 대신하더라도 인간에게 끝까지 남겨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대학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입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