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 차를 타며 출근하는 길,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걷다 보면 지하철역 입구의 쉼터를 만납니다. 이 공간은 비록 서너 평 남짓하나 의자, 냉난방기, 공기청정기, 무선충전기 등 나름의 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새벽 4시 50분경, 이곳을 지날 때면 쉼터에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입니다.

첫 번째는 지친 모습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눈에 박히게 보는 대리 운전 기사들입니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마지막 손님을 기다립니다. 그들에게 이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는 더욱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빌딩을 청소하거나 경비를 서는 분들이죠. 대중교통의 첫차를 기다리며 표정없는 얼굴로 앉아있는 그들을 나는 ‘새벽을 여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부터 쉼터에는 세 번째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0대 전후로 보이는 여성 노숙자입니다. 그녀는 쉼터에서 추위를 피하다 지하철 2호선 첫차 시간에 맞춰 이동을 시작합니다. 지하철 역에는 또 다른 노숙자가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삶의 어떤 끝자락에 서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무심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합니다. 이 광경은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예전에는 ‘새벽’과 ‘첫차’가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새벽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희망의 새벽’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그 빛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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