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는 시대나 사회의 흐름과 상황을 반영한다.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던 말 가운데 요즘 귀에 너무 익숙해진 것들이 있다. ‘비대면’, ‘드라이브 스루’ 같은 경우다. 사람들의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 용어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비대면’을 쳤더니 16,000,000개가 검색되었다. ‘비대면 기술 사업화’, ‘비대면 오리엔테이션’, ‘BTS 비대면 공연’, ‘비대면 음주단속’, ‘비대면 학습법 특강’ 등 ‘비대면’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뉴스만 4백만개가 넘었다. 자동차를 탄 채 물건을 사는 ‘드라이브 스루’는 ‘비대면’의 수단 가운데 하나다. 일부 패스트푸드 판매점에서 볼 수 있었던 게 지금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본디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대면’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와 비접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15년부터 금융권을 중심으로 비대면 거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거래 통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직접 찾아가 신원을 확인 받지 않더라도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IT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기반이 전제 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비대면’은 지금까지 당연시 되던 기존의 제도와 관습, 생활 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직접 듣지 않고도 제도 교육이 이루어진다. 회사에 나가지 않고도 직장의 업무를 처리한다. 함께 모이지 않고도 예배와 미사를 진행한다. 물론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인터넷 처치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게 더 이상 소수나 비주류로 인식되지 않게 된 것이다.

‘비대면’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고리로 한다. 디지털은 세상을 ‘비대면’으로 서서히 변모시켜왔다.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를 친구로 만드는 SNS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자리잡은 기존 질서에 맞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급속한 변화에 맞닥뜨리는 상황을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것을 강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접목을 통한 세상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실험 과정을 거쳐 대안으로 인정받고, 확장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생활 기반으로 자리잡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지금의 급격한 변화는 이런 과정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어서 상황이 진정되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모두가 경험한 이런 변화가 결국 기존의 틀을 바꾸며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추동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비대면’은 효율성을 바탕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으로 설명하면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으며 적은 비용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온라인 학교,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 기존의 틀을 벗어난 종교의 출현, 인터넷 공연의 확산 등으로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그 위력이 더욱 강력해졌다. 세계를 지배하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공룡들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개인의 동선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IT 감시망은 더욱 촘촘해졌다.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첨단 기술이 가세했다. 디지털이 일군 ‘비대면’은 이제 선택이 아닌 문화와 현상으로 정착해나갈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휴머니즘의 가치와 균형을 지켜내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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