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노는 언제나 청소년 곁에 있었다. 잡지를 몰래 돌려보던 시절도, 인터넷 초창기에 부모 몰래 검색하던 시절도 그랬다. 금단의 사과는 늘 담장 안쪽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청소년은 더 이상 포르노의 소비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그들을 피해자로, 그리고 가해자로 만들었다.
숫자가 먼저 말한다
2023년 한 해, 전 세계 딥페이크 영상 가운데 98%가 포르노였다. 그 피해자의 99%는 여성이었다. 한국은 이 문제에서 비교적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포르노 생산량의 약 53%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국내 피해 데이터는 더 충격적이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딥페이크 성범죄는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에서 2024년에는 1,202건으로 폭증했다. 피해는 누구에게 집중됐는가. 2024년 딥페이크 피해 지원 데이터에 따르면 피해자 1,807명 중 97%가 여성이었고, 10대 이하가 46.4%, 20대가 45.9%로 10·20대가 전체 피해의 92.3%를 차지했다. 초록우산의 조사에서는 초중고교생 20명 중 1명이 자신이나 지인의 얼굴이 음란물에 합성된 것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검거된 가해자 중 10대 비중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 수치를 “청소년 문제”로 읽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디지털 범죄에 익숙한 성인 가해자일수록 증거를 남기지 않고 단속을 피한다. 검거 통계는 실제 가해자 분포가 아니라 탐지 가능성의 분포를 반영할 수 있다. 피해는 분명히 아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가해의 전모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넓을 가능성이 높다.
왜 이렇게 빨리 퍼졌는가: 기술의 민주화라는 역설
AI 이미지·영상 생성 기술의 확산은 창작과 표현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동일한 기술이 성범죄의 문턱도 함께 낮췄다.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절차는 단순하다. AI 얼굴합성 앱을 내려받아 영상 템플릿을 고른 뒤 합성할 얼굴 사진을 업로드하면 순식간에 완성된다. 이들 서비스는 별도의 성인 인증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포르노 전문 플랫폼의 87%가 이미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AI 성인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26년 6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플랫폼들은 체형, 얼굴 특징, 인종, 나이를 자유롭게 조합·설정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아동 성착취물(CSAM) 분야의 증가세는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NCMEC)에 신고된 AI 관련 아동 성착취 사건은 2024년 상반기 6,835건에서 2025년 상반기 440,419건으로, 불과 1년 만에 6,443% 증가했다. 기하급수적 증가라는 말도 이 수치 앞에서는 과소표현이다.
인지적 위험: 뇌가 배우는 것
이 문제를 자녀 보호의 문제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AI 생성 포르노는 인지 발달 단계에 있는 청소년의 뇌에 특정한 성적 각본(sexual script)을 학습시킨다.
AI가 생성하는 콘텐츠에는 현실적 제약이 없다. 실제 인간의 신체적 다양성, 관계의 복잡성, 상대방의 감정과 경계—이런 것들이 모두 제거된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즉시, 저항 없이 작동하는 콘텐츠만 존재한다. 이를 반복적으로 소비한 뇌는 실제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오류’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성적 각본의 왜곡은 단순히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는 수준이 아니라, 친밀함·동의·타인의 경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더 깊은 차원의 문제도 있다. 청소년기는 성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성적 콘텐츠는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하나의 준거틀이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끌리는지,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이 모든 질문에 AI가 만든 콘텐츠가 먼저 답을 제시하는 상황이 됐다.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AI 포르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별도의 깊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다. 이 칼럼에서는 문제의 윤곽만을 짚고, 이후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규제의 현실: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한국은 2024년 9월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해 딥페이크 음란물의 소지·시청·구매에도 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미동의 딥페이크 소지·시청·구매에는 최대 3년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미성년자를 협박·강요한 경우에는 최소 5년 이상 징역이 적용된다. 미국에서는 2025년 ‘테이크 잇 다운법’이 통과되어 플랫폼에 비동의 성적 이미지 삭제 의무를 부과했고, 영국 온라인 안전법은 위반 플랫폼에 매출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규제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생성 도구는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고, 서버는 국경을 넘어 존재하며, 콘텐츠 삭제 요청은 수십만 건이 적체된다.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요청 93만여 건 가운데 약 28.7%는 삭제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삭제되지 않은 콘텐츠는 피해자에게 영구적 상처를 남긴다. 법은 사후 대응 수단이지, 사전 예방 도구가 아니다.
새로운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규제와 처벌로 범죄를 억제한다 해도, 아이들이 AI 포르노를 통해 형성하는 성에 대한 관념—그것은 누가,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
한국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딥페이크 성범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성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한다. 이것이 핵심 공백이다.
기존 성교육은 주로 임신과 피임, 성병 예방을 다루는 생물학적 프레임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AI 포르노 시대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요구한다. AI가 생성한 성적 이미지는 ‘콘텐츠’인가,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인간을 대상화한 행위인가. 무한히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성적 판타지가 일상화될 때, 인간 사이의 성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가. 이 질문들은 도덕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 AI 시대에 ‘성’이 갖는 의미 자체를 다시 묻는 철학적·사회적 논의다.
그리고 이 논의는 교실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AI가 만든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읽는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공간에서 타인의 신체와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갖는 윤리적 의미, 나아가 기술이 매개하는 성적 경험이 청소년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대화—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성교육의 출발점이다.
담장 안쪽에 있던 금단의 사과는 이제 아이들 손 안에 들어왔다. 달라진 것은 접근 방식만이 아니다. 그 사과가 아이들을 베는 도구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도구의 의미를 가르치지 않는 한, 다음 세대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베이고, 또 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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