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손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왠지 불안하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나의 분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신이 내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노트북이다. 그런데 노트북이 사라졌다.

지난 한 달간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특정 행사에 매달렸다. 행사의 기획과 준비, 콘텐츠 생산, 공연 섭외, 홍보 등 모든 것을 통할해야 했다.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일까지 나의 몫이었다. 몇몇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수익을 바랐다면 굳이 이런 일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지역을 위한 봉사였기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인의 첫 3.1만세운동이었던 ‘원삼만세운동’ 행사를 마쳤다.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행사에 4백여명이 참여하고, 거리행진까지 무사히 끝냈다.

그런데 행사를 끝내고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는 뒤처리까지 마친 뒤 노트북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누가 치웠을 것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행사에 참여한 단체에 일일이 전화해 이들의 짐에 섞이지 않았는지 확인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행사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파출소를 찾아갔지만 노트북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낡은 노트북 가방을 쓰레기로 오인한 것은 아닌지 거리 청소를 한 미화원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모른다는 얘기 뿐이었다. 누가 훔쳐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의심까지 들게 되었다.

수고했다는 주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연신 나의 부주의를 탓했다.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자다 깨기도 했다.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북 안에 차곡차곡 쌓인 자료 때문이다. 노트북이야 새로 사면 되지만 수년간의 나의 기록은 어디서 찾는다는 말인가?

심지어 노트북 안에는 내가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새 컴퓨터로 옮겨 놓은 오랜 세월의 자료까지 담겨 있었다. 20여년 전 아들의 어린 시절 동영상도 이 컴퓨터에 있었다. 마치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사람처럼 고통이 컸다.

노트북을 찾기 위해 실시간 위치 추적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계정에 로그인 되어있어야 했고, 위치 서비스가 켜져 있어야만 했다. 내 노트북은 위치 추적이 불가능했다. 사전 조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사라진 지 나흘이 지났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새 노트북을 알아보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행사 때 렌트한 LED 스크린 차량 업체였다. 차량을 정리하다 노트북 가방을 발견했다고… 아,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즉각 기쁜 소식을 주위 사람들과 공유했다.

지금까지 나는 나름 데이터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각종 자료를 알아보기 쉽게 질서 있게 보관했다. 일찍이 매달 돈을 내고 구글 드라이브를 이용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실시간으로, 정기적으로 이곳에 자료를 업데이트하지는 않았다. 필요할 때만 간헐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허용 공간의 1/3도 채우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데이터의 보안과 보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USB와 외장하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특별한 때가 아니면 과거의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나를 반추해 볼 수 있는 데이터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적어도 내가 존재하는 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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