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객(歌客)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 되던 해인 2016년 6월, 그가 다시 무대에 섰다.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열창했다. 김광석은 홀로그램(Hologram) 기술을 통해 부활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갚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김광석 홀로그램 콘서트

2020년 10월, 모델 겸 배우인 킴 카사디안(Kim Kardashian) 앞에 고인이 된 아버지가 등장했다. 2003년에 사망한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을 떠들썩 하게 한 O. J. 심슨 사건의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로버트 카사디안(Robert Kardashian). 홀로그램 영상은 킴 카사디안의 남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아내를 위해 마련한 깜짝 생일 선물이었다. 킴 카사디안은 2분 20초 길이의 이 홀로그램 영상을 자랑하며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홀로그램은 사람이나 물체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광석의 홀로그램은 그의 얼굴 CG와 수십 가지 특유의 표정, 그리고 립싱크를 한 연극배우의 동작과 연기를 섞어 만들어졌다. 로버트 카사디안의 홀로그램의 제작 방식도 비슷하다. 다만 AI 딥페이크(Deepfake) 기술로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다.

로버트 카사디안의 홀로그램은 “내가 너를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딸에게 당부한다. 그리고 “너는 세상에서 정말로 가장 천재적인 남편과 결혼했다.(You married the most, most, most, most, most genius man in the whole world, Kanye West)”고 말한다. 킴 카사디안은 2014년에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다. 부친이 사망한 지 11년이 지나고 나서다. 당연히 딸의 배우자가 누구인지, 결혼 생활은 어떤 지 알 수가 없었는데도 홀로그램은 사위를 잔뜩 추켜세운다.

킴 카사디인의 트위터 캡처

김광석과 로버트 카사디안, 두 홀로그램의 근본적 차이가 여기서 존재한다. 김광석의 홀로그램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되살려 추억과 감동을 주는데 역점을 두었다면 로버트 카사디안의 홀로그램은 가족의 덕담을 담았지만 그 내용은 엄밀히 따지면 고인의 뜻과 무관하거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 김광석의 홀로그램이 팩트를 기반으로 했다면 로버트 카사디안의 홀로그램은 추정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개인적 의도가 깊이 개입되었다. 그 의뢰인이 킴 카사디안의 남편이다.

카사디안의 생일 선물 홀로그램을 미디어가 앞다퉈 가십과 연예뉴스로 취급할 때 영국의 BBC는 죽은 이의 권리 문제를 제기했다. 디지털 윤리학자 펄 액스봄(Per Axbom)은 홀로그램이 사망한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생존 당시의 신념이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망 전 홀로그램 활용에 대한 동의 여부, 그리고 그 홀로그램의 만들고 활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그램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유명 정치인의 홀로그램이 평소 그의 언행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어떻게 될까?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에 혼란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홀로그램이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가짜뉴스의 또 다른 수단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증강현실(AR) 업체 포플로 스튜디오(Pooplar Studio)의 창업자인 데이빗 리퍼트(David Ripert)는 홀로그램의 입체적 사실적 얼굴 표현을 위한 AI 기계학습에는 500장에서 1,000장 정도의 사진이 필요하며, 동영상이 많을수록 보다 수월하다고 말한다. 말하기는 훨씬 더 쉽다. 대상 인물의 실제 몇 마디를 합성해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만든다. 달리 표현하면 쉽게 조작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주로 전시나 공연, 광고 마케팅에 활용되던 홀로그램 기술이 인공지능과 가상현실(MR), 증강현실(AR)과 결합해 교육, 의료, 서비스, 미디어, 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죽은 이를 다시 불러오는 홀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을 잊지 않기 위해 홀로그램으로 간직하는 사업이 번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이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부활시키는 홀로그램이 왜곡을 낳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게 진정 고인이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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