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중증 폐질환 환자에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이 환자에게 의사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마지막 통보를 했다. 환자의 호흡은 더 거칠어지겠지만 통증 완화를 위해 의사는 모르핀 처방을 권유했다. 결국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환자는 사망했다. 안타까운 이런 죽음의 모습은 병원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그런데 논란이 불거졌다.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하며 힘겹게 말을 떼는 죽음의 최후 통첩은 아무리 의사이지만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고귀함 때문이다.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 메디컬 센터는 의료와 기술을 접목한 원격 진료와 헬스케어 등으로 유명한 병원그룹이다. 미국 전역에 병원이 있다. 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사망한 78살의 어네스트 퀸타나(Ernest Quintana)의 경우가 논란이 되었다.

CT 촬영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 곁에는 33살의 손녀가 지키고 있었다. 바퀴가 달려있고 비디오 화면이 부착된 키가 큰 로봇 같은 기기가 병실로 들어왔다. 화면에는 헤드셋을 착용한 의사가 보였다. 바로 이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을 통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의사의 얼굴이었으며, 환자에게 이런 식으로 죽음을 알려 주리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고 손녀는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심지어 이 화면 속 의사는 환자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쪽에서 말을 해 손녀가 환자에게 어떤 내용인지 다시 전달해 주어야만 했다.

환자 가족이 공개한 영상으로 사망 임박을 알리는 의료 기기의 모습

이런 사실은 환자 가족과 지인의 SNS룰 통해 알려졌고, 뉴욕타임스와 BBC 등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힘든 직업이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마련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교감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병원 측은 환자가 생명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기술의 힘을 빌어 통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인간적 배려는 없었다. 가족들이 분개한 이유다.

죽음을 통보하는 데 활용된 기기는 일종의 원격진료 기술이다. 영상통신 기술을 이용해 의사가 곁에 있지 않아도 진료나 처방이 가능하다. 외딴 섬이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오지 같은 의료 사각 지대의 환자는 물론 분초를 다투는 위급 환자의 진료에도 도움이 된다. 편의나 비용 면에서 원격진료는 기술이 제공하는 또 다른 혜택일 뿐 아니라 헬스케어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논란이 된 환자의 가족들도 원격진료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조차 기술로 대신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병원 측은 의료진이 환자나 환자 가족과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을 했으며, 논란이 된 영상 통보는 의사와의 대면 상담 이후 다른 지역 병원 의사에 의한 후속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화면 속 의사가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가족은 화면 속에 등장한 의사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암을 진단하고, 로봇이 인간 의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술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원격진료는 대형병원을 찾지 않아도 전문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게 만든다. 기술이 준 혜택이다. 카이저 퍼머먼트 병원그룹은 환자의 49%만 의사가 대면 진료를 한다. 먼저 이메일이나 전화로 상담을 한 뒤에 병원을 찾는다. 기술이 선도하는 병원이다. 기술의 특징은 편리함과 실용성이다. 환자나 환자 가족과 감정의 교류를 배제한, 기술을 이용한 죽음의 통보는 실용성을 우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술사회에서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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