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면서 공공의 안녕이 개인의 인권보다 우선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정보 확보, 확진자의 동선 파악, 격리 대상자의 위치 이탈 방지는 코로나19 저지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게 과도하게 활용되고, 사태 진전 이후에도 일상적인 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정부는 감염자가 움직인 경로를 불과 10분만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CCTV, 스마트폰 위치 정보,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 경찰과 통신사, 금융회사 등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결합된 이런 다양한 정보를 통합해 개인의 사생활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확진 환자의 이동 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우려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개인 정보 노출로 호텔을 방문한 사람이 불륜 관계로 의심 받고, 노래방에 놀러간 사람이 도우미로 조롱 받는 등 확진자의 2차 피해가 잇따랐다.

CNN은 러시아의 감시 시스템에 대한 여론의 변화를 보도했다. 모스크바 경찰은 지난주에 검역과 자가 격리를 위반한 200명을 체포하고 벌금을 물렸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17만대의 카메라와 얼굴인식 장치가 그 역할을 맡았다. 올해 초부터 작동되기 시작한 이 감시 시스템은 당초 시민들의 즉각적인 반발과 항의를 불러일으켰지만 코로나 사태로 여론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올레그 바라노프(Oleg Baranov) 모스크바 경찰 총수는 “가려진 거리나 구석이 남아있지 않도록 우리는 더 많은 카메라를 원한다.”면서 9천대의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시내에 물샐 틈 없는 감시망을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본인 동의 없이 SNS를 들여다보거나 특정인의 모바일 위치 정보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공개적인 논의 과정없이 진행되었다.

물론 코로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감시 감화가 러시아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IT 감시 국가로 악명높은 중국은 말할 것 없고, 홍콩은 모든 입국자에게 전자 손목 밴드와 스마트폰 위치 추적 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대만은 자가 격리자가 위치를 이탈하면 경찰에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는 ‘전자 울타리(electronic fence)’ 제도를 운영한다.

첩보와 대테러 업무를 전담하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신베트(Shin Bet)는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정보를 활용해 확진자와 감염 의심자를 철저히 감시한다. 이들이 2m 이내로 접근하거나 10분 이상 이탈하면 경고를 받게 된다. 유럽연합의 이동통신사들은 이탈리아와 독일, 오스트리아 정부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모니터링 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 기업으로부터 개인 정보를 얻기를 고대하고 있다.

IT 감시 기술은 코로나 펜데믹을 저지하기 위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를 내주는 대가다. 전쟁 같은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강제 징병과 더불어 민간 소유의 물자 징발 조치도 단행된다. 전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도 전시와 다르지 않다. 효과적인 진화를 위해 개인의 일부 권리가 유보되거나 침해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는 지구촌을 IT 감시 기술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엄격해야 할 개인 권리와 정보에 대한 관리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들도 이런 상황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정보 노출과 인권 침해에 무뎌졌다.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인권단체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권력 속성은 모든 정보에 접근하기를 원하고, 감시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 필요성에 국가 안보, 범죄와 테러 예방에 이어 전염병이 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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