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2천 명이 통과하는 관문

미국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UNC-Chapel Hill)에는 편입생을 제외한 모든 신입생이 예외 없이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 하나 있습니다. English 105, 우리말로 옮기면 “영작문과 수사학” 정도가 될 이 과목은 한 학기에 115개에서 120개 섹션이 동시에 열리고, 섹션당 정원은 19명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매 학기 2천 명이 넘는 신입생이 이 교실을 거쳐 갑니다. 담당 교원 역시 정교수가 아니라 영문·비교문학과 소속 박사과정생과 박사후연구원, 강의전담 교원들입니다. 즉 통일된 교재나 지시문 하나가 아니라, 수백 명에 이르는 개별 강사의 재량과 해석이 쌓여 만들어지는 과목입니다.

이 구조를 먼저 짚어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대학 글쓰기 교육에 던진 충격을 다루는 기사나 정책 문건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총장 명의의 지침이나 학칙 개정, 혹은 표절 탐지 소프트웨어 도입 같은 ‘위로부터의 대응’을 다룹니다. UNC의 사례가 흥미로운 지점은 정반대입니다. 대학 본부가 정책을 하달하기 전에, 이미 현장의 개별 강사들이 저마다 다른 실험을 벌이고 있었고, 그 다양성 자체를 대학이 뒤늦게 추인하고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 다양성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 영문·비교문학과 교수이자 대학 글쓰기 프로그램 디렉터인 대니얼 앤더슨Daniel Anderson입니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질문

이야기는 교실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시작됩니다. 챗GPT가 등장한 직후, UNC 대학도서관의 학부 교육·연구 지원 사서 데이나 더빈Dayna Durbin에게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써도 표절인가요”, “명예규정을 어기는 건가요” 같은 불안 섞인 질문들이었습니다. 더빈은 English 105 수업에 배정된 도서관 강의를 담당하고 있었고, 자연히 이 질문들을 받아내는 상담 창구 역할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더빈은 이 문제를 혼자 감당하는 대신 앤더슨 교수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카롤리나 AI 리터러시 이니셔티브(Carolina AI Literacy Initiative, 이하 CAIL)입니다. 데이터과학·소사이어티 대학원(School of Data Science and Society)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이 사업은 프롬프트 작성법, 편향 인식, 사실 검증, 표절 회피 같은 실용적 내용을 담은 동영상과 학습 모듈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출발점의 성격입니다. CAIL은 애초에 정책 준수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방어적’ 필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어적 출발점이 시간이 지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앤더슨과 그의 동료 라이언 프리위트Ryan Prewitt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 변화를 “정책과 감시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규정을 정하고 부정행위를 걸러내는 일이 물론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일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나면 그다음 질문, 즉 “이 기술을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데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앤더슨 교수의 실험: 자유롭게 쓰게 하고, 실패를 관찰하다

이 전환의 배경에는 앤더슨 교수 본인이 직접 겪은 구체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작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생성형 AI 플랫폼을 학기 내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한 적이 있습니다. 금지도 아니고, 특정 과제로 국한하지도 않은, 사실상 전면 개방이었습니다.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앤더슨은 이 실험의 결과를 “엇갈렸다”고 표현했습니다. 그중 그가 특별히 언급한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학생들이 리서치 페이퍼를 준비하며 챗봇에게 “가장 좋은 참고문헌 10편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챗봇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문헌을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입니다.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 현상입니다.

여기서 앤더슨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실패나 사고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이 경험을 통해 “검증”이라는 태도를 몸으로 배웠다고 평가했습니다. 교사로서 바라던 학습 효과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다시 말해, AI를 통제된 환경 안에서만 만나게 하는 대신 학생들을 실패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그 실패를 딛고 스스로 검증 습관을 형성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이는 흔히 회자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 — AI를 전면 금지하거나, 혹은 AI의 산출물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거나 — 모두와 거리를 두는 제3의 길입니다. 오류를 학생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설계, 그리고 그 오류를 처벌이 아니라 학습의 재료로 삼는 태도가 이 실험의 핵심입니다.

같은 과목, 전혀 다른 두 개의 수업

앤더슨과 프리위트가 공동으로 이끄는 디지털 혁신·AI 리터러시 랩(Digital Innovation and AI Literacy Lab)이 전하는 English 105의 풍경은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같은 과목 번호 아래 극단적으로 다른 두 접근이 공존합니다.

한 강사는 생성형 AI의 알고리즘적 글쓰기 방식을 20세기 중반의 실험적 문학 그룹 울리포(Oulipo)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수업을 설계했습니다. 울리포는 라이포그램이나 회문 같은 인위적 제약을 스스로 부과하고 그 제약 안에서 창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학 실험 집단입니다. 이 비교는 생성형 AI를 완전히 새로운 위협으로 보는 대신, 규칙과 제약 속에서 창의성이 발생해 온 오래된 문예사적 계보 안에 위치시키는 시도입니다.

또 다른 강사는 정반대의 극단으로 갑니다. 리서치 페이퍼 과제 전체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연습에 할애하되, 최종 제출물에서 학생이 직접 쓴 산문 자체는 아예 배제합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어떤 과정이 학술적 산문을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는가”를 성찰하는 별도의 리포트를 요구합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평가 대상으로 삼는 설계입니다.

앤더슨과 프리위트는 이 다양성을 결함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미덕으로 규정합니다. 통일된 지침 하나로 수백 명의 강사를 묶는 대신, 각자의 전문성과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실험이 병존하도록 열어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자체 제작 교재는 열두 개 장 전체에 AI 리터러시 관련 내용을 심어 놓았습니다. 학생들이 별도의 특강이 아니라 매주 읽는 교재 본문 안에서 AI와 관련된 사고 실험, 글쓰기 연습, 학문 분야별 조언을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두 가지 오해

앤더슨과 프리위트는 학생들 사이에 퍼진 오해 두 가지를 짚습니다. 첫째는 생성형 AI와 사고력이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이들은 이 전제 자체를 반박합니다. AI로 자신의 사고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그것은 다른 수많은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중하고 엄밀한 태도로 AI를 다루는 습관은 글쓰기의 산출물을 개선할 뿐 아니라,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 자체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둘째는 AI가 챗봇 창 안에만 존재한다는 착각입니다. 이들은 AI가 노동, 에너지, 도시계획, 연금, 심지어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환경 전체에 편재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영향을 감지하는 능력은 프롬프트 창 안에서 발휘되는 순전히 기능적인 리터러시와는 다른 층위의 문해력을 요구합니다.

이 두 오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AI를 결과물을 내놓는 상자로만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상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상자가 어떤 더 큰 맥락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지 않는 시선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앤더슨의 실험으로, 그리고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인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

앤더슨의 실험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핵심은 기술 하나를 허용했는지 금지했는지가 아니라 실패를 어디에 배치했는가에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을 오류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한가운데 세워두었고, 그 오류가 발생한 순간 개입해서 바로잡는 대신 학생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참고문헌을 마주한 학생이 배운 것은 ‘이 도구는 못 믿을 것이다’라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모든 산출물은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지식이 된다는 더 오래된 원칙이었습니다. 울리포 비교 수업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수업이 정반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결과물의 진위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같은 원리를 공유했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앤더슨과 프리위트가 인문학이야말로 이 작업의 적임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첫째는 실용적인 이유입니다. 생성형 AI를 제대로 부리려면 상당히 정교한 글쓰기 전략이 필요한데, 글쓰기 교육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개념인 ‘수사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 — 화자, 청중, 맥락, 시점 등 소통 행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파악하는 능력 — 이 챗봇에 질의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프롬프트를 쓸 때 이 요소들을 엄밀하게 명시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분석적 렌즈로 검토하는 과정,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참고문헌을 걸러내기 위해 출처를 하나하나 되짚는 과정은 결국 같은 근육을 쓰는 일입니다. 인문학이 오랫동안 훈련해 온 것이 바로 이 근육입니다.

둘째는 문화적인 이유입니다. 인문학은 기술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오래도록 진지하게 다뤄 온 학문입니다. 명령어와 컴퓨터 코드 중심이던 인터페이스가 자연어 중심으로 옮겨 갔다는 사실의 무게는, AI를 노동·에너지·도시계획·정치 전반에 편재한 힘으로 읽어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이들에게만 온전히 보입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과 전문성이야말로 인문학이 이 전환기에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자산입니다.

결국 이 실험이 인문학자들에게 남기는 통찰은 단순합니다. AI 리터러시 교육의 진짜 분기점은 기술을 얼마나 허용하느냐가 아니라, 실패와 검증을 교육 과정의 어디에 놓아두느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다시 언어로 정리해 사고의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훈련은, 결코 컴퓨터공학이나 정보학의 몫으로 넘겨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인문학이 서 있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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