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미국에서 컴퓨터과학(Computer Science)은 가장 안전한 전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좋은 대학에서 CS를 전공하고 코딩 실력을 갖추면 높은 연봉의 기술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공식이 꽤 오랫동안 통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의 컴퓨터과학 학위 취득자는 거의 5배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공식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AI 시대에는 수학이 새로운 컴퓨터과학 전공이 되는가?”
미국 컴퓨터과학 전공자의 불완전취업률은 19%에 이르고,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술기업의 감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CS 전공 등록도 최근 8.4% 감소했습니다. AI가 프로그래머를 없애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코딩을 잘하면 안전하다’는 믿음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오래된 학문인 수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AI의 밑바닥에는 결국 수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형대수(linear algebra), 확률과 통계, 확률과정(stochastic processes), 수치해석(numerical methods)은 현대 AI를 떠받치는 기초입니다. 금융회사에서도 복잡한 시장을 분석하고 투자 전략을 설계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수학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AI 기업과 퀀트 금융회사들은 뛰어난 수학 인재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일부 최상위 퀀트 기업은 뛰어난 수학 전공 신입에게 35만~50만 달러에 이르는 보상을 제시합니다.
물론 이것을 “이제 수학과에 가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이런 보상은 세계적인 수준의 극소수 인재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이 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 채용 전문가의 말입니다.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은 코딩할 수 있는 수학자(a mathematician that can code)입니다.”
순서가 흥미롭습니다. ‘수학을 아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코딩할 수 있는 수학자’입니다.
AI 이전에는 사람이 직접 코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배우고 수많은 코드를 직접 입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코딩 능력 자체가 희소한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AI는 자연어 몇 줄만으로 상당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냅니다.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능력의 희소성은 앞으로 더 빠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는 능력,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구조로 바꾸는 능력, 변수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는 능력,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그리고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검증하는 능력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수학이 본래 가르치려 했던 능력입니다.
여기서 한국의 수학교육을 생각하면 조금 불편해집니다.
우리 아이들은 세계 어느 나라 학생보다 오랜 시간 수학을 공부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을 다니고, 선행학습을 하고, 수많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풉니다. 어려운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AI 시대에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수학’이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로 그 수학일까요?
공식을 기억하고, 유형을 익히고,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 정답에 빨리 도달하는 능력은 오히려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입니다. 인간이 기계와 경쟁하기에 가장 불리한 능력을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훈련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수학은 문제집을 더 빨리 푸는 수학과는 조금 다릅니다.
답이 없는 문제를 붙잡고 오래 생각해보는 것, 여러 방법으로 접근해보는 것, 왜 그런지 설명해보는 것, 틀린 답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아보는 것,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숫자와 관계로 표현해보는 것.
정답을 찾는 수학보다 생각을 만드는 수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수학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수학 본연의 가치를 되찾을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 계산 자체의 가치가 낮아졌듯이, 생성형 AI의 등장은 정형화된 문제풀이의 가치를 낮추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추론과 모델링, 논리와 탐구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이 새로운 CS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아니오일 것입니다.
컴퓨터과학이 지고 수학이 뜬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를 수학과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변하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능력의 층위입니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문제를 풀어주는 시대에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AI를 이용해 해결하고, 그 결과를 다시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부모가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는 수학을 얼마나 앞서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수학으로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AI 시대에 수학이 다시 중요해진다면, 우리가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수학의 양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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