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찌 정권은 6백만명이 넘는 유태인을 학살했다. 희생자들 가운데 100만명은 지금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에는 수십만장의 사진과 영상 등 관련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구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다니엘 팻(Daniel Patt)은 ‘프롬 넘버스 투 네임스’(From Numbers to Names)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익명으로 남아있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와 생존자의 이름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전쟁 이후까지 수많은 사진과 영상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분석해 특정 인물의 이름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AI 얼굴인식 기술을 활용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86세의 블랑쉬 픽슬러(Blanche Fixler)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6살 때 침대 밑에 숨어 잡혀가는 것을 겨우 피했다.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그녀에게는 어릴 때 가족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낡고 빛 바랜 흑백 가족 사진은 또 다른 사진 속에서 그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BBC 캡처, 아래 사진 가운데 중앙 여자 어린이가 블랑쉬

얼굴인식 인공지능은 가족 사진의 생존자 얼굴과 박물관 아카이브의 사진 속 수백만명의 인물들을 대조하며 비교 분석했다. 그리고 50여명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에서 같은 인물을 찾아냈다. 고령의 생존자가 기억에서 사라져 전혀 알지 못하던 사진이었다. 단체 사진은 그녀가 가족과 폴란드에서 살 때 찍은 것이었다.

단체 사진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3명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블랑쉬는 곧바로 자신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이모와 소년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이로써 50여명의 단체 사진 가운데 6명의 이름이 확인되었다. 인간의 수작업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얼굴인식 인공지능이 해냈다.

1980년대 초반 국내는 물론 세계를 울린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무려 138일간 계속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울 찾습니다’라는 방송이다. 남북으로 갈리고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저마다 사진을 들고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아마 당시 인공지능과 얼굴인식 기술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신속히 가족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다.

기술은 늘 선용과 악용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첨단 기술일수록 그 위력과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이유다. 선동 정치로 침략과 집단 학살을 자행한 나찌의 만행을 드러내는 일이 지금도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얼굴인식 기술이 여기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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