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기업 순위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글로벌 IT 업체들이 1위에서 5위를 싹쓸이했다. 삼성전자는 17위였다. 세계 최대 컨설팅 그룹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한 2019년 글로벌 베스트 브랜드에서도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1위에서 4위였고, 페이스북은 14위를 기록했다. 삼성은 6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소위가 글로벌 IT 빅4 CEO를 소환해 청문회를 열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이 청문회에서 “온라인 경제의 황제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는 소위 위원장의 모두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애플의 팀쿡, 아마존의 베이조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황제로 지칭했다. 통계로 보나 위상으로 보나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 기업의 명칭 뒤에는 이미 자연스럽게 제국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월스트리트 저널 라이브 영상 캡처

황제와 제국이라는 용어는 압도적인 힘과 거대한 통치 영역을 떠올리게 한다. 온라인 황제들이 한꺼번에 청문회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장을 공룡처럼 삼키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경쟁 구도가 무색해졌다.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유럽에서는 이미 과징금 등으로 이들 제국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었다.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이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미 의회는 그동안 이들 빅4의 독점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애플은 앱스토어의 독점적 운영으로 비판을 받아왔고, 소매점들을 문닫게 한 아마존은 자체 상품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반발을 초래했다. 구글은 검색 광고 시장을 장악하며 못하게는 게 없을 정도로 문어발이 되었다. 페이스북은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통해 경쟁의 싹을 잘랐다. 의회만 아니라 미국 48개주 검찰이 구글과 페이스북의 독점적 지위 남용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

빅4 CEO들은 독점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로를 경쟁 상대라고 말하며, 삼성과 화훼이, 월마트와 코스트코, 틱톡과 유투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경쟁자로 지목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 IT 제국의 지배력과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계와 현실이 말해준다. 이들이 가는 길이 표준이 되고,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미래가 되는 세상이다. 어느 누구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어쩌면 억울해할 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의 선구자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자부심이 있을 것이다. 생활의 혁명을 이루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문화를 만들었다. 기술 개발과 창의성, 아이디어로 신세계를 만든 이들이다. 시장을 점령한 게 아니라 사용자들이 스스로 선택해 넓혀준 것이라는 항변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시장에서 독점의 폐해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른 게 디지털 시장이다. 디지털은 기존 산업 구조를 해체한다. 오프라인 상점을 문닫게 하고, 소통과 교류의 방식을 바꾸고, 신문과 방송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기존 교육 시스템에 자극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IT 제국의 개별 소비자나 사용자들은 독점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 정보를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는 삶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지구촌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업의 목표가 이윤 창출이라는 것은 IT 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활용하는 IT 기업의 서비스는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의 목표는 다르지 않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쟁 상대의 등장을 꺼리고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않고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독재를 답습하게 된다. IT 제국의 황제들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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