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전통의 호주 뉴스통신사 AAP(Australian Associated Pres)가 문을 닫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루 평균 500개 이상의 기사와 750장의 사진, 20개의 동영상을 생산하며 호주 전역의 주요 신문과 방송, 웹사이트 200여 곳에 뉴스를 제공하는 AAP의 폐쇄 결정은 호주 국민은 물론 미디어 업계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0년 창간 75주년을 맞아 발간된 이 매체의 역사를 기록한 책의 서문에는 저널리즘의 자부심이 나타나 있다. “AAP 뉴스는 정치적 속셈이 없고, 광고주를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 뉴스 가치가 가장 중요하며, 최고 경영진이나 편집인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 보도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지켰다.”(AAP news has no political axe to grind, nor advertisers to please. News value is paramount, and successive boards, chief executives and editors have guarded its independence and reporting integrity above all else.)고 증언한다.

AAP 홈페이지 캡처

201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태뉴스통신사기구(OANA) 총회에서 AAP 편집국장은 언론의 신뢰성과 책임을 주제로 연설하며 공직자의 발언이나 발표에 대해 8~9차례의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는 자사의 엄격한 팩트체크 시스템을 소개했다. 저널리즘 본령을 지키는 것은 팩트체크와 더불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백명의 실직자를 내고 6월에 문을 닫는 AAP의 붕괴는 재정 문제 때문이다. 무료 온라인 뉴스가 급증하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뉴스와 정보의 거대 포식자들 앞에서 더 이상 지탱할 여력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이런 상황은 2019년애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가 페이스북과 구글의 시장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정부에 23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AAP가 아니어도 전세계 전통 미디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디지털혁신과 수혈로 변신을 꾀하고, AI 등 첨단의 기술을 도입하고, 가짜뉴스의 대항마로 새 길을 찾을 뿐 아니라 구글 같은 IT 공룡의 지원에 기생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하지만 갈수록 취약해지는 재정 기반 속에서 왜곡되지 않은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의 순수한 가치를 지켜내는 일은 지난한 과제이다.

저널리즘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장벽은 일부 미디어 종사자와 수용자들의 확증 편향과 참을 수 없는 편협성이다. 미국의 상황이 그렇고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 쪽 시각으로만 보고 편을 들거나 편을 나누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공정’이나 ‘정도’는 한 물 간 용어처럼 비칠 때가 많다. 택일을 요구하는 이념적 정치적 팬덤(fandom)은 시각을 마비시키거나 혐오감을 부추기고 상황을 회피하게 만든다.

포털에 치이고, 독자와 시청자가 줄어들고, 광고가 급감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의 저널리즘이 겉보기에는 AAP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만 3개나 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거나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맸거나 예전 같지는 않지만 독과점 시대의 기득권이 사라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공생의 경쟁을 터득했을 수도 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세계 38개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2019년까지 내리 4년간 맨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국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평균 42%였는데 한국은 절반 수준인 22%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를 대변한다는 신문이 창간 100년을 맞았고, 국민주 형식의 진보 신문은 첫 주주배당 사실을 알렸다. 역사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두 신문을 비롯한 어느 매체도 신뢰도에서 유투브와 네이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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