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을 접하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구매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쇼핑 비교 사이트인 파인더닷컴(finder.com)이 2017년 7월 미국인 2,24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8.6%가 온라인 충동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홀린 듯 이렇게 물건을 샀다는 사람이 64%나 되었다. 나중에 후회하고 배우자나 가족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사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은 한정 판매, 이벤트 행사 같은 상술의 작용도 있지만 충동구매는 근본적으로 기술이 뒷받침하고 스피드가 주도하는 편리한 세상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첨단 기술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별 맞춤형 상품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감성을 건드리며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배송 과정은 금방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속성과 심리를 꿰뚫는 마케팅은 소비의 분별력과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파인더닷컴 캡처

속도가 가져온 변화의 패턴은 소비만 아니라 생활의 상당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미디어 시장의 변화가 그렇다. 신문과 방송의 전통적인 저널리즘은 기득권이 무너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반면에 광속의 전파력으로 주체하기 힘들 만큼 힘이 커진 소셜 미디어는 뉴스와 정보의 흐름을 장악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과 교류의 핵심이 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 거짓과 불신을 부추기고, 편을 가르며 적개심을 자극하는 추악한 이면을 함께 노출했다.

편리함 뒤에 감춰진 부작용을 극복하는 일은 속도가 가치의 척도가 된 디지털 세상이 떠안은 과제다. 때문에 이런 문제 역시 기술과 소프트웨어로 풀어가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속도의 제어를 통해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다. 파인스닷컴이 만든 크롬 브라우저의 확장 프로그램인 ‘아이스박스(Icebox)’는 인터넷 충동 구매를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다운 받아 설치하면 ‘Put it on ice’ 버튼이 생성돼 유명 전자상거래 사이트 4백여곳의 구매 버튼을 대체한다. 여기에 상품을 담으면 바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설정에 따라 3일에서 30일간의 냉각 기간을 갖게 된다. 묻지마 쇼핑을 지양하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충분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지금은 뉴스 사이트인 복스(Vox)의 본부장을 맡고 있는 앤드류 골리스(Andrew Golis)는 2014년에 고품질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하는 ‘디스(This.)’라는 획기적인 앱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이 미디어 플랫폼은 하루에 한 개의 링크만 허용하는 게 핵심이었다. 무차별적이고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를 차단하고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언론의 찬사를 받은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 앱은 널리 확산하지 못한 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 충동구매를 방지한다는 아이스박스 확장 프로그램 역시 실제 활용은 미미한 수준이다.

좋은 의도와 참신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사회적 부작용을 기술로 보완하려는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극히 한정된 분야의 미미한 사례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속도와 편의성에 너무 익숙해져 이게 몸에 뱄는지 모른다. 속도 앞에서 생각의 폭과 깊이가 점점 줄어드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만 직시하는 디지털의 빠른 흐름 속에서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은 앞으로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의식적인 거리 두기나 내려놓기가 아니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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