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체험을 하고 나오는 연극이 있다.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작품으로 뉴욕에서 장기공연 중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의 얘기다. 공연장은 호텔로 꾸며진 5층 건물 전체다. 건물 곳곳에는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응대하는 배우들이 포진해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맥베드(Macbeth)>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흔히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머시브 연극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 관객이 자율적으로 이동하며 내러티브를 구성토록 하는 참여형 공연을 가리킨다. <슬립 노 모어>의 관객은 100개도 넘는 방을 마음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공간 및 배우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만의 체험을 구성하게 된다. 

 VR 공연 <잭: 1부(Jack: Part 1)>(2018) 역시 이용자가 공간 및 배우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작품이다. 결정적 차이점은 이용자가 사전정보 없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이용자가 맞닥뜨리는 공간과 배우가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영국 민담인 <잭과 콩나무>를 토대로 한 이 작품에서 공간적 배경은 실제 체험공간을 가상세계로 매핑한 것이다. 배우들은 체험공간 안에서 위 이미지와 같이 모션 캡쳐 수트를 입은 채 이용자를 대면하여 맞춤형으로 연기한다. 현실의 공간과 사물, 그리고 배우의 움직임은 가상현실의 3D 애니메이션 이미지와 실시간으로 연동한다. 그러나 이용자는 HMD를 쓴 채 스탭의 안내를 받아 체험 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체험 초반에, 이용자는 애니메이션 풍의 실내에 달린 전구에 머리를 부딪치고 화들짝 놀라워하기 일쑤이다. 여타 VR 콘텐츠에서처럼 전구 이미지를 쓱 통과하는 대신 실제로 부딪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 이는 체험공간에 진짜 전구가 대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자신 앞에 실제 배우가 서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배우와 대화를 주고받거나 입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마티아스 셸부르(Mathias Chelebourg) 감독에 따르면, 이용자 중 상당수는 자신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했다고 착각하고 기술의 발달에 놀라워하다가 실상을 파악한 후 실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이 작품이 라이브 공연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간단한 전략이 이용자의 호기심과 몰입도를 끌어올리는데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초사실주의(hyper-realism)를 ‘완벽한 진짜(completely real)’가 ‘완벽한 가짜(completely fake)’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유명 인사를 본떠 만든 밀랍인형이 ‘실재(reality)’를 복제하려 한다면, 디즈니랜드는 ‘환상(fantasy)’을 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밀랍인형보다 더 초사실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잭: 1부>는 이머시브 연극과 가상현실 기술이 3D 애니메이션과 결합하여 이용자 각각이 고유한 경험을 구성하는 초사실주의적 라이브 공연으로 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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