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이론가인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메타사실주의(metarealism)를 고전적 사실주의(classical realism)와 대비시켜 설명한 바 있다. 고전적 사실주의가 주체로 하여금 환영(illusion)이 지속되는 내내 그 환영을 온전히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메타사실주의는 환영과 환영의 유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왕복운동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마노비치에 따르면, 게임이나 DVD 등의 상호작용적 매체에서 주체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관람자(viewer)의 역할과 스토리에 참여하는 이용자(user)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수행하게 된다. 주체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너그럽게 속아주는 주인의 자리에” 위치하며, 환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오히려 환영에 몰입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관점이 게임이나 DVD 등의 상호작용적 매체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터키 소설가인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인지 질문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독자가 소설이 실재라고 생각하고 몰입하는 것과 소설가의 상상력을 헤아려보며 성찰하는 것은 서로 논리적 모순을 이룬다. 그러나 파묵은 소설의 힘과 생명력이 실재와 상상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순되는 사고를 동시에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소설은 문자라는 추상적 기호를 통해 독자에게 매개되는 장르로서 파묵의 논의는 심리적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반면, 마노비치가 상호작용적 매체의 사례로 언급한 게임이나 DVD 등은 기술집약적 속성을 지니며, 지각적 몰입감의 차원에 초점을 맞춰 논의된 것이다. 그러나 지각적 차원이건 심리적 차원이건, 이용자가 콘텐츠의 안팎을 넘나들며 환영과 환영의 유예 사이를 왕복하는 체험은 결국 몰입감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메타사실주의로 수렴된다.

가상현실은 각종 입출력장치를 통해 상호작용성을 구현하여 지각적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는 매체이다. 이상적으로는 스토리를 통한 심리적 몰입감과 지각적 몰입감이 결합될 때, 이용자의 몰입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다만, 이용자가 콘텐츠와의 상호작용을 스스로 인지하느냐의 여부는 상호작용의 의미효과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이용자가 콘텐츠에 대한 조작경험과 조작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콘텐츠를 완결적인 환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반면, 이용자가 자신의 움직임이 모션 트래킹에 의해 추적된 데이타가 연산작용을 거쳐 출력된 것임을 인지할 수도 있다. 이때, 이용자는 콘텐츠를 인위적 조작의 결과로 받아들이며 환영을 유예할 것이다.

팀 러플(Tim Ruffle) 감독의 VR 애니메이션 <특별 배달(Special Delivery)>(2015)은 이용자에게 환영과 환영의 유예 사이를 오가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성탄 전야에 산타와 수위가 벌이는 활극을 유쾌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가상공간 곳곳에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영역이 숨어있다. 러플 감독은 “스마트폰이라는 ‘가상의 창(imaginary window)’을 통해 진짜 창으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줌으로써, 크리스마스 버전의 <이창(Rear Window)>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왼쪽 이미지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펼쳐놓은 이미지이다. 이웃한 건물들의 창문 중 일부는 이용자의 시선이 향할 때 활성화된다. 그동안 주인공 콤비는 동작을 멈추고 이용자의 시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이용자가 실시간렌더링 방식의 VR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거나 이 작품을 단 한 번만 체험할 경우, 자신의 시선에 따라 콘텐츠의 구성이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용자가 콘텐츠와의 상호작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경우, 이 작품은 완결된 환영으로 체험된다.

반면, 이용자가 시선을 통한 조작과 조작의 결과를 번갈아 체험하며 VR 콘텐츠의 구성이 달라짐을 인식할 수도 있다. 오른쪽 이미지는 잠들어있던 아이가 산타의 선물을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방방 뛰다가 천장에 박힌 모습이다. 아이 방의 창문은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활성화되는 영역으로 이용자의 시선이 언제 닿느냐에 따라 아이가 산타의 선물을 발견하는 시점이 달라진다. 즉, 이용자는 어느 이웃집을 어떤 순서로 바라볼지 시선의 움직임을 자율적으로 조율하며 콘텐츠의 체험을 의식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가상세계를 조작하며 환영을 유예하는 체험은 상호작용성의 인공적 성격과 작품의 허구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마노비치의 통찰과 같이, 상호작용성이 이용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보다는, 이용자에게 가상 세계에 대한 통제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즉, VR 콘텐츠에서 몰입과 조작, 지각과 상호작용이 반드시 대립항으로 설정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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