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다른 승객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탑승할 때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데도 운전기사가 받아주지 않고 편치 않은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고, 50여분간 내내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밖으로 나가달라는 보안요원의 요구에 직면했고, 열화상감지기와 손 소독제를 갖춘 책상에 현장 대응반이라고 쓰인 옷을 입고 앉아있던 방역 담당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편의점과 약국을 들렀지만 마스크는 돈을 줘도 구하지 못하는 귀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마스크 없이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가며 환승역 한 군데를 거쳐 지하철로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상황이 몹시 난감했습니다. 불편해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운전기사의 눈치를 살피며 버스 맨 뒤쪽 구석에 숨어 깜빡 잊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나온 내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돌아와서도 마스크 관련 일상은 계속되었습니다.

소포를 보내기 위해 동네 우체국에 들렀다가 길게 늘어선 줄에 깜짝 놀랐습니다. 뉴스를 통해 도시의 마스크 전쟁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현재까지 코로나 청정지역인 이곳 시골 마을까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칠 줄은 몰랐습니다. 11시부터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는데 앞줄에 서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침 7시부터 기다렸다고 합니다.

전세계가 코로나 19와 싸우고 있습니다.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바꾸어 놓으며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까지 전파하고 있습니다. 인구 7천여명의 내가 살고 있는 이 한적한 면 단위 지역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국민 마스크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방과 방역은 전염병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마스크 전쟁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국가재난급 질병이 발생하면 초기부터 전권을 행사해 적극 대응하는 미국의 서전 제네랄(Surgeon General)인 제롬 아담스(Jerome M. Adams)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제발 마스크를 사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주지 않을뿐더러 마스크 품귀 사태는 꼭 필요한 보건 종사자들을 위험에 빠트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마스크보다는 손 씻기가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마스크는 근본적으로 병을 옮기는 것을 막는 용도이며 감염으로 보호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을 막는 용도라는 것입니다. WHO는 홈페이지에 건강한 사람이 코로나 환자를 돌볼 때,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 119 예방행동수칙도 다르지 않습니다. 6가지 일반국민 행동 수칙은 흐르는 물에 비누로 꼼꼼히 손 씻기, 기침 재채기 할 때 옷소매로 가리기, 씻지 않은 손으로 눈 코 입 만지지 않기, 사람 많이 모인 곳 방문 자제, 발열과 호흡기 증상 있는 사람과 접촉 피하기, 그리고 의료기관 방문시 마스크 착용하기를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65세 이상이나 임신부, 만성 질환자 등 고위험 대상자들에게만 외출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국민의 마스크 생활화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불안 심리가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보여주기식 관습이나 미디어의 무책임한 선정성이 이를 부추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치인, 정부나 각계 지도층 인사들은 TV 화면에 비칠 때마다 마스크 무장이 당연한 것처럼 연출합니다. 미디어는 품귀 사태와 끊임없이 늘어선 줄을 경쟁적으로 보여주며 불안감을 부추깁니다. 그러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예방과 방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의료인들조차 보호 장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공포와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정부 당국 뿐 아니라 미디어도 이성적인 대처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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