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나노 바나나 프로

새벽 지하철은 ‘삶의 고단함’을 실어나릅니다. 검은색 패딩을 깊게 눌러쓰고 눈을 감은 채 쪽잠을 청하는 그들은 주로 건물의 청결을 책임지거나 차가운 건설 현장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입니다.

어제 새벽, 도곡동에서 신분당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평소처럼 무심코 객차 안을 둘러보던 중,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시선이 멈췄습니다. 얼룩덜룩한 국방색 문양의 패딩과 두툼한 귀달이 모자, 무릎 위에 자리잡은 묵직한 검은 배낭까지. 다소 투박하고 알록달록한 복장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내 눈길을 붙든 것은 그의 투박한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그 책은 내지의 테두리가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손때가 닿은 모서리는 둥글게 닳아 있었고, 오래된 종이 특유의 바랜 결이 멀리서도 느껴졌습니다. 그 낡은 페이지 위를 천천히 건너다니는 것은 거친 손에 쥐어진 연필 한 자루였습니다. 그는 두꺼운 돋보기를 끼고, 연필로 정성스럽게 줄을 그으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습관처럼 생각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책이었을까, 왜 잠을 조금이라도 더 붙이지 않고 저토록 집중했을까. ‘하루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에게 저 낡은 책 한 권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런데 그 질문을 붙잡고 몇 번이고 되짚다 보니, 문득 그 질문들 자체가 괜한 평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책이 가벼운 소설이면 어떻고, 뜻 모를 난해한 문장이면 또 어떻습니까. 제목을 알아내는 순간 이해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장르였는지 맞힌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하루가 설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읽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읽었는가’였습니다. 그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책을 펼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요약할 준비도, 누군가에게 말할 근거도, 오늘의 성과로 환산할 계산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문장에 발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부러웠습니다. 저는 독서를 좋아하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읽는 동안 계속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내게 남길 ‘쓸모’를 따지고, 읽은 시간을 ‘성과’로 바꾸려 하고, 끝내는 읽지 못한 목록을 불안으로 쌓아두곤 했습니다.

그는 이윽고 책을 덮었습니다. 연필을 조심스레 끼우고, 돋보기를 벗어 책 위에 얹은 뒤, 책과 함께 가방 속으로 차분히 넣었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곧장 문 쪽으로 향했고, 문이 열리자 망설임 없이 내려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오래된 종이의 색과, 연필이 지나간 자리의 상상뿐이었습니다.

그 후로 ‘무위독서(無爲讀書)’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사람도 AI도 매일 새로운 문장을 찍어내는 시대에, 무위독서는 결과를 만들지 않는 대신 숨을 돌릴 틈을 줍니다. 결론을 뽑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설명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생각이 다시 들리고 마음의 속도가 내려갑니다. AI가 더 빠르게 정리해줄수록, 인간에게 남는 독서의 자리는 ‘정답’이 아니라 ‘호흡’에 가까워집니다.

새벽 지하철에서 만난 그 애서가는 어쩌면, 무거운 배낭 속 연장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하루를 붙들어 주는 것은 낡은 책 한 권, 그리고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간 연필 한 줄이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정보의 속도에 허덕일수록, 그런 한 줄의 무게가 더 필요해집니다. 목적 없는 읽기.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독서. 그 작은 무위(無爲)가, 이 시대의 숨구멍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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