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둘러싼 조용한 전쟁,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AI는 똑똑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똑똑함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첨단 알고리즘과 더 큰 모델 파라미터 수, 더 강력한 컴퓨팅 자원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금 AI를 진짜로 움직이고, 또 앞으로 그 방향을 결정지을 핵심은 데이터입니다.
요즘 AI를 보면, 마치 집을 짓는 것과도 같습니다. 알고리즘은 설계도이고, GPU는 크레인입니다. 하지만 정작 집을 지으려면 ‘땅’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의 땅이 바로 데이터입니다. 지금 AI 업계에서는 이 데이터를 둘러싼 조용하지만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전쟁은 끝났다, 이제는 데이터 전쟁입니다
AI 모델이 아무리 정교해도, 학습할 데이터가 없다면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GPT 모델이 유창한 글을 써내는 것도, 당신이 올린 댓글과 누군가의 블로그, 위키 문서, 뉴스 기사 덕분입니다. 그래서 요즘 대형 AI 기업들은 좋은 알고리즘을 짜는 것만큼이나,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OpenAI는 최근 레딧Reddit과 수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용자들의 ‘진짜 대화 데이터’를 훈련에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묻고 답한 수많은 질문이, AI의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교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얼굴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한 Clearview AI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법적 제재를 받았습니다. 30억 개 이상의 얼굴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무단으로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갖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대목입니다.
분산된 데이터 생태계, 통합으로 향하다
지난 10년간 데이터 산업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성장해 왔습니다. 한 기업은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옮기고, 또 다른 기업은 이를 분석하며, 다른 기업은 그 데이터를 다시 꺼내 씁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각조각 나뉘어진 생태계는 이제 AI 시대의 속도와 스케일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데이터 전 과정(end-to-end)을 통합하려 하고 있습니다.
- Salesforce는 최근 Informatica를 8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 Databricks는 Neon을 10억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 Fivetran은 Census를 인수해, 데이터 이동과 활용을 모두 아우르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닙니다. AI가 유의미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기반’을 단단히 구축하려는 전략적 인수입니다. 기술은 물론, 인재와 고객, 시장 포지션까지 모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AI의 미래는 연구실이 아닌 이사회에서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기술의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AI의 방향은 알고리즘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데이터를 갖고 있으며, 누가 그것을 더 잘 정제하고 통합할 수 있는지에 따라 AI의 성능과 편향, 적용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AI가 어떤 진실을 학습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관을 강화하며,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동할지조차 데이터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진짜 전쟁은 GPU를 놓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를 둘러싼 인수와 합병의 회의실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AI가 아닌, 데이터가 승패를 가릅니다
‘AI는 새로운 석유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입니다. 알고리즘은 정제 기술이고, 기업은 정유소이며, 우리는 모두 데이터를 제공하는 산유국입니다.
데이터를 누가 모으고, 어떻게 다루고, 누구의 기준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적 관심을 넘어서, 디지털 권력의 재편과 새로운 윤리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AI를 이야기한다면, 알고리즘이 아닌 데이터를 누가 장악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AI는, 똑똑한 놈이 아니라, 똑똑하게 먹은 놈이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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