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은 AI에게 더 감동적인 은유를 가르치고, 변호사는 더 정교한 법률 논리를 주입합니다. 공상과학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2026년 1월,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벌어지는 노동시장의 ‘웃픈’ 현실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구직자들의 새로운 수입원: 자신의 옛 역할을 수행할 AI를 훈련시키기”라는 기사를 통해,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이 AI 모델 트레이닝 시장으로 몰려드는 흐름을 전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기반 스타트업 머코(Mercor)는 2025년 한 해에만 3만 명이 넘는 계약자를 고용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 라벨링이 아닙니다. 전문가가 AI의 답변을 검토하고, 비판하고, 더 나은 판단의 기준을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피부과 전문의는 의료 파트너의 의사결정 지원 도구를 돕는 일로 시간당 최대 250달러를 받을 수 있고, 시인·작가 등은 문학적 뉘앙스와 정서 표현을 “가르치는” 역할로 시간당 최대 150달러 수준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현상을 “새로운 고수익 부업이 생겼다”는 한 줄로 정리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지식 노동의 지형도가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기술 진보가 인간에게 내미는 가혹한 청구서에 가깝습니다.
첫째, ‘지적 자본’의 채굴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과거 생성형 AI가 웹의 텍스트를 대규모로 긁어모으는 ‘노천 채굴’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전문가의 머릿속에 있는 고순도 지식—즉 암묵지와 판단 규칙—를 직접 뽑아내는 ‘정밀 시추’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데이터만으로는 성능 향상에 한계를 느낀 기업들이, 돈을 지불해서라도 전문가의 기준과 맥락 판단을 사들이는 단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 전문성이 아직 가치 있다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그 가치가 AI로 이식되는 순간, “희소성 기반의 임금”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지식이 상품이 되는 순간은 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품이 되는 대상이 ‘지식’이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 직접적입니다.
둘째, 노동의 ‘자기 잠식’이 벌어집니다. 기사 속 참여자들은 명문대와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구직난 속에서 그들은 생계를 위해 ‘나를 대체할 존재’를 훈련시키는 일에 뛰어듭니다. 웃으며 “내가 언젠가 내 직업을 없앨 모델을 가르치는 셈”이라고 말하면서도, 당장의 월세와 생활비 앞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이 구조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노동 소외의 한 변형입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으로 만든 산출물(더 유능해진 AI)이 결국 노동자 자신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경로가, 이제는 우회로가 아니라 ‘직선 경로’가 됩니다. “가르침”이 곧 “대체”의 가속 페달이 되는 역설이 일상화됩니다.
셋째, ‘고숙련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명과 암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플랫폼 노동을 우리는 배달·운송 같은 육체노동으로 떠올렸지만, 이제 변호사·의사·저널리스트 같은 전문직도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되어 AI의 성능을 검증하고 튜닝하는 부품이 될 수 있습니다. 머코가 OpenAI, Anthropic 등과 같은 고객사를 언급하는 대목은, 이 흐름이 이미 산업의 중심부로 들어왔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일부에게 이는 안전망이기도 합니다. 정규직 채용이 얼어붙는 국면에서, 고액의 단가로 “잠깐 숨을 구멍”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전망이 영구적인 다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계약서가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다루는지, 시간 추적 소프트웨어 같은 감시 도구가 어떤 조건으로 붙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장기적으로 어느 쪽의 협상력을 키우는지에 따라, 이것은 구제책이 아니라 구조 고착이 될 수 있습니다.
WSJ 보도는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인간의 지성이 AI라는 거대한 댐을 채우는 물길로 쓰이고 난 뒤, 그 물길이 마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시간당 200달러는, 지식을 ‘영구 이전’하는 대가로는 오히려 너무 싼 값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대체할 괴물’을 키우며 월급을 받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과도기적 현상인지, 인간 노동의 새로운 정상인지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밥벌이’라 불러온 노동의 정의가 지금 AI 앞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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