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아버지의 스마트폰 화면에 영어와 일본어 사전 앱이 깔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틈틈이 어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손 글씨로 두 번이나 성경 필사를 끝낸 뒤 시간이 남아 무료하다고 하시더니 외국어 공부에 마음이 끌리신 것 같다. 일제시대 국민학교 시절을 보내며 배운 가물가물해진 일본어를 되살리고, 내친김에 영어까지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셨던 것이다.
올해 여든 다섯인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교육을 받으시지는 않았지만 귀동냥으로 정보 검색과 카카오톡 대화, 사진 찍어 보내기 등을 익혀 기본적인 활용에는 문제가 없다. 연세로 보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 숨가쁘게 진화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새로운 도전과 수용은 노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이다.
어학 공부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를 위해 두 개의 앱을 설명해 드렸다. ‘구글 번역’ 앱을 작동해 우리말이 영어나 일본어로 통역 되고 문자로도 표시되는 것을 보여드리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 드렸다. 영어나 일본어 문장을 앱으로 사진 찍어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도 가르쳐드렸다. ‘구글 포토’ 앱을 활용하면 사진을 무제한 저장할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PC에서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진이 자동으로 분류된다는 사실도 알려드렸다. 사진을 보정하고 공유하는 방법까지 보여드렸는데 몇 번 해보더니 금방 익숙해 지셨다.
스마트폰이 생활의 동반자가 되면서 지나친 몰입이나 무분별한 정보 수용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되었고, 스마트폰은 그래서 청소년들의 문제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와 활용의 세대간 불균형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한국정보진흥원의 조사를 보면 노인층의 디지털 정보 소외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연히 드러난다. 55세 이상 장년층이나 노년층의 디지털 기기 접근도는 82.5%로 젊은층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 역량과 활용을 합친 디지털 정보화 지수는 우리나라 전 국민을 평균 100으로 봤을 때 60대는 55.5, 70대는 28.7에 그쳤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나 문자 외에 뉴스 보기와 정보 검색, 카카오톡, 사진찍기와 올리기, 음악듣기, 동영상 보기, 길찾기를 할 수 있으면 그나마 잘 활용하는 편일 것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노인들의 디지털 정보 격차는 당장 현실적인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조금씩 늘어난다고 하지만 노인들의 온라인 쇼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가격비교를 통해 보다 저렴한 쇼핑을 하고 쿠폰을 활용해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
금융권의 급속한 디지털 전환은 스마트폰 활용에 미숙한 노인들에게 이중고를 안겨준다. 은행 점포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디지털 금융 거래에 따른 금리나 수수료 혜택도 받을 수 없다. 2017년 9월부터는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 통장을 아예 발행하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60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는데, 그것은 노인층이 디지털 금융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반증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trategy Analytics)가 추정한 2017년 말 인구대비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7.6%로 세계 6위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에 이어 두 번째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시대를 상징한다. 하지만 보급률이 정보화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정보와 활용이 균형을 이루고, 세대간 계층간 격차를 줄여 디지털의 혜택을 골고루 같이 누릴 때 스마트폰 보급률은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아버지의 금융 거래는 아직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은행에 직접 가서 일을 보신다. 돈 문제만큼은 창구에서 얼굴을 맞대야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디지털 생태계에 익숙한 젊은층과 달리 노인층은 평생 몸으로 체득한 아날로그가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모든 게 디지털로 편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의 디지털 정보 격차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어르신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고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디지털에 대한 보다 편리하고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과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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