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도 그 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온 ‘디지털 잊힐 권리’에 대한 실제적인 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4월 29일, 자기게시물에 대한 관리권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인터넷에 올린 자기게시물에 관해 본인이 원하면 지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앞으로 이용자가 과거에 인터넷에 올렸지만 지우기 힘들게 된 디지털 흔적을 지울 수 있게 된다.
그간 회원 탈퇴 등의 사유로 본인이 직접 게시물을 지울 수 없게 된 데에 대해서 헌법상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에 근거하여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에게 타인의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인터넷상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인해 취업·승진·결혼 등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들이 보다 쉽게 구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시효가 지난 채무 관련 기사에 대해 검색사업자의 검색목록 삭제 책임을 인정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소위 인터넷상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회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잊힐 권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잊힐 권리’의 국내 도입방안을 위해 2014년부터 법조계·학계·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반을 운영하였고, 세 차례의 공개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왔다. 그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및 알 권리와의 충돌 문제, 사업자의 기술적‧경제적 한계 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한국의 경우, 유럽연합(EU)과 달리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는 임시조치 등 기존 구제수단이 있으나, 자기가 올린 게시물의 경우 이용자의 명백한 의사에도 불구하고 구제가 곤란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현행 법제도 하에서 사각지대에 있던 자기게시물에 대한 관리권을 상실한 이용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면서도 제3자의 표현의 자유 침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범위에서 우선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방통위는 밝혔다.
이번에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조치를 원하는 이용자는, 일단 본인이 직접 자기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지 시도하고, 회원 탈퇴 등으로 직접 삭제가 어려운 경우 게시판 관리자에게 접근배제를 요청하면 된다. 또한 게시물 작성자가 사망했을 때에는 고인이 지정한 대리인이나 유족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대리인과 유족의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리인의 의견을 따르도록 했다.
게시물이 검색목록에서도 배제되기를 원한다면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검색목록 배제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법률 또는 법령에서 위임한 명령 등에 따라 보존 필요성이 있는 경우와 게시물이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서 접근배제 요청이 거부될 수도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해 방통위는, 이용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사업자의 자율 준수를 토대로 시행하는 것이므로 사업자의 자발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에 인터넷사업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접근배제(블라인드) 방식에 따른 기술 구현의 어려움과 국내외 사업자의 차별 문제, 자기 게시물에 대한 본인 확인의 어려움 등에 대한 논란이 아직 해소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본인 외에 다른 사람이 올린 게시물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구제받을 방안은 여전히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넷사업자의 경우, 게시물 작성자가 접근배제를 요청할 시, 제3자가 공익적인 이유를 내세워 이의신청을 할 경우, 어느 쪽에 맞춰야 할지 판단이 어렵거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빠르면 오는 6월 중순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디지털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남아 있다. 시행에 앞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좀 더 보완된 내용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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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소식이네요. 대한민국에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시행 되어서요. 홍보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