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그래머리(Grammarly)는 문법 오류를 잡아주고, 어색한 문장을 다듬어주는 “똑똑한 빨간 펜”에 가까운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새 기능 ‘전문가 리뷰(Expert Review)’는 사용자의 글을 읽고, 특정 작가·학자·전문가의 관점에서 조언을 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입니다. 겉으로 보면 “더 깊은 피드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훨씬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살아 있는 저자도, 이미 세상을 떠난 저자도, 본인 허락 없이 자신의 이름과 권위가 인공지능 인터페이스 안에서 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머리 설명에 따르면 이 기능은 사용자가 쓴 글을 분석한 뒤, 그 주제와 문체에 맞는 “관련 전문가”를 골라 피드백을 제시합니다. 사용자는 추천된 전문가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직접 특정 전문가나 참고 출처를 선택해 조언의 방향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회사는 이를 두고 글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고, 논리를 강화하고, 각 분야의 시각을 반영하도록 돕는 기능이라고 홍보합니다. 쉽게 말해, 혼자 원고를 붙들고 씨름하는 대신 화면 속에서 여러 명의 가상 편집자와 논평자를 불러오는 셈입니다.
문제는 그 “전문가”가 실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머리의 사용자 안내문에도 이 기능이 보여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며, 해당 인물이나 기관이 서비스에 참여했거나 이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용자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나 칼 세이건Carl Sagan,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 같은 이름이 달린 조언을 보게 되지만, 그 조언은 그들이 직접 한 말이 아닙니다. 이름은 사람의 것이고, 문장은 기계의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비스는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타인의 명성과 권위를 빌려 오는 장치가 됩니다.
와이어드WIRED는 이 기능이 유명 저자와 학자들의 이름을 내세워 피드백을 제공하면서도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더버지The Verge 역시 언론인과 저자들 가운데 일부가 자기 이름이 이 기능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기사로 보고 처음 알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직함이나 설명이 부정확했고, 연결된 출처도 엉뚱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전문가적 통찰의 민주화”라기보다, 실존 인물의 평판을 인공지능 상품에 붙여 신뢰감을 높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더 거슬리는 대목은 고인까지 호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와 학자의 이름을 불러와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원고를 고쳐줬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기술적으론 가능할지 몰라도 윤리적으로는 대단히 거칠고 오만합니다. 이는 단순한 흉내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유와 명성을 데이터로 환원하고, 그 위에 상업적 인터페이스를 덧씌우는 행위입니다. 누군가 평생 쌓아 올린 문체와 사유의 무게가,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불러 쓰는 “AI 리뷰 캐릭터”로 축소되는 것입니다.
그래머리 입장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진화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사는 최근 단순한 문법 교정 회사를 넘어 더 넓은 인공지능 생산성 플랫폼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더버지 보도에 따르면 회사는 슈퍼휴먼(Superhuman) 중심의 브랜드 전략 아래, 글쓰기 교정에서 이메일, 문서, 업무 전반으로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에서 보면 ‘전문가 리뷰’는 우발적 실험이 아니라, “AI가 당신의 글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 당신의 판단까지 대신 보조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이 변화의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예전의 글쓰기 도구는 맞춤법을 바로잡고, 중복 표현을 줄이고, 더 공손한 어조를 추천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도구는 “이 글은 어떤 방향으로 더 설득력 있어야 하는가”, “어떤 시각을 더 가져와야 하는가”, “누구처럼 써야 하는가”까지 개입합니다. 즉, 도구가 교정자에서 편집자 비슷한 존재로 올라서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학생이나 초보 직장인처럼 권위 있는 피드백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용자에게는, 화면에 뜬 이름 자체가 하나의 판단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교육적으로도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원래 생각을 조직하고,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널리 퍼지면 학생들은 점점 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가”보다 “어떤 이름의 권위를 빌리면 더 그럴듯해 보이는가”를 먼저 고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키우는 훈련보다, 알고리즘이 배합한 권위의 어조를 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셈입니다. 글쓰기가 사유의 훈련이 아니라, 각종 AI 심사대를 통과하기 위한 최적화 작업으로 바뀔 위험이 여기 있습니다. 이는 편리하지만, 교육적으로는 빈약합니다.
물론 이 기능이 전적으로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빠르게 초안을 점검하고, 논리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특정 분야의 관점에서 질문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실제 효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실제 조언”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이름을 입힌 확률적 출력”이라는 전제가 분명할 때만 그렇습니다. 이 선이 흐려지는 순간, 사용자는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출된 권위에 설득당하게 됩니다.
그래머리의 새 서비스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인공지능의 성능 향상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기술 기업들이 이제 인간의 문장만이 아니라 인간의 명성, 권위, 비평의 목소리까지 상품화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맞춤법을 고쳐주던 도구가 이제는 죽은 작가까지 불러와 내 글을 심사하는 시대입니다. 편리하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더 똑똑한 교정기가 아니라, 인간의 권위마저 자동완성하려는 인공지능 산업의 다음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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