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내용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게 되는” 짧은 영상이 자주 눈에 띕니다. 누가 봐도 정성 들여 만든 창작물이라기보다, 비슷한 형식과 장면을 반복하며 시선을 붙잡는 데만 집중한 영상들입니다. 이런 유형을 가리키는 말로 최근 ‘AI 슬롭(AI slop)’이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카프윙Kapwing은 AI 슬롭을 “자동 생성 도구로 만든 부주의하고 저품질의 콘텐츠가 조회수와 구독을 늘리기 위해(혹은 정치적 의견을 퍼뜨리기 위해) 유통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 개념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플랫폼의 체감’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숫자가 있습니다. 카프윙(Kapwing) 연구를 인용한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새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처음 추천되는 쇼츠 500개를 살펴봤을 때 104개가 AI 슬롭으로 분류됐습니다. 다시 말해 “처음 유튜브를 시작한 사람이 만나는 피드에서 5개 중 1개 꼴”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표본에서 브레인롯은 3분의 1 수준으로 보고됐습니다.  이 수치는 “유튜브 전체의 21%가 슬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규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추천 경험의 오염도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경고음이 큰 이유는, 플랫폼이 사용자와 처음 관계를 맺는 자리부터 저품질 대량 생산물이 섞여 들어온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불편한 대목이 있습니다. 카프윙은 국가별 트렌딩 채널 상위 100개를 분석한 결과, “트렌딩 AI 슬롭 채널의 총 조회수”에서 한국이 84.5억 뷰로 1위이고, 파키스탄이 53.4억 뷰로 2위라고 명시합니다. 3위는 미국으로 33.9억 뷰라고도 덧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 경쟁’이 아니라 구조적 신호입니다. 특정 시장에서 이런 콘텐츠의 조회가 크게 쌓인다는 것은, 추천 알고리즘이 학습하는 성공 신호가 그만큼 풍부하다는 의미이고, 그 신호는 다시 유사 포맷의 복제와 확산을 부추깁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AI 슬롭이 잘 먹히는 실험장”이 될 위험이 커집니다.

이 현상이 위험한 이유는 “유치해서”가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카프윙은 전 세계 1만5000개 규모의 상위 채널을 훑어 AI 슬롭만 올리는 채널 278개를 확인했고, 이 채널들이 630억 뷰와 2억2100만 구독자를 모았으며 연간 약 1억1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저품질이 수익으로 환전되는 순간, 제작자는 더 빠르고 더 싸게 더 많이 찍어내는 쪽으로 유인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그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고, 플랫폼은 ‘체류 시간’을 기준으로 그것을 다시 유통합니다. 이 순환이 굳어지면, 창작의 품질 경쟁이 아니라 주의력 착취 경쟁이 전면으로 나오게 됩니다.

특히 한국에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읽혀야 하는 이유는, 쇼츠중심 소비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아이와 청소년이 “무엇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사라진” 경험을 더 자주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AI 슬롭은 대개 맥락과 근거가 약하고 반복이 강합니다. 반복은 친숙함을 만들고, 친숙함은 판단을 느슨하게 합니다. 카프윙도 AI 슬롭이 단순한 ‘스팸’을 넘어 정치적 목적의 여론 흔들기까지 포괄할 수 있다고 정의합니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영상이 피드를 채우는 문제는, 결국 사회 전체의 정보 위생과 학습 능력의 문제로 번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금지할 것인가” 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유튜브라는 거대한 유통 시스템에서 무엇을 ‘기본값’으로 둘지에 대한 감시와 요구입니다. 한국이 1위라는 사실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일상에서 알고리즘과 제작 경제가 결합해 ‘저품질 대량 생산’이 빠르게 유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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