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ESCO)는 9월 8일을 ‘국제 문맹퇴치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로 정해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문자를 쓰거나 읽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문맹은 소통을 가로막고, 빈부의 격차를 벌리며, 국가간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유네스코는 1964년에 이 날을 제정했다. 그런데 2017년 문맹퇴치의 날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디지털 세상의 문맹퇴치(Literacy in a digital world)’라는 부제가 그 방향을 말해준다.
과거에는 문자 해독 능력이 생활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는 지금의 시대는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디지털의 변화를 거스르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사실과 거짓이 섞여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옳고 그름의 분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디지털이 바꾸어 놓을 미래 세상에 철저히 대비하고 적응해야 하며, 그 혜택을 충분히 골고루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게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지역간, 국가간 디지털 역량에 큰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빈부의 고착화, 경제력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더욱이 디지털 세상은 분초 단위로 바뀌는 데 이를 따라가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급변하는 디지털의 모습은 현실과 유리되고, 때로 불안감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생활 속의 디지털을 실현하는 가장 친숙한 기기를 꼽으라면 단연 스마트폰이다. AI 음성 비서를 비롯한 온갖 첨단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화와 문자, SNS, 길 찾기 기능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학교다. 디지털의 미래는 앞으로 아이들이 정면으로 마주쳐야 할 세상이다. 하지만 공교육에서 이런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는 활용의 도구가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다. 교과 과정이나 교육 방식은 과거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학 문턱을 넘게 만드는 것이 여전히 학교의 가장 큰 과제이고 역할이다. 교육당국도 학교도 교사도 속수무책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점령할 때 아이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는 지 가르쳐 주는 곳이 없다. 어쩌면 이마저도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지 모른다.
유네스코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누구도 차별 없이 21세기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어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만드는 게 목표다. 학교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지향하는 궁극의 방향도 학교의 미래 인재 양성과 궤를 같이 한다. 아이들이 혁신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우며, 함께 협력하는 공동작업을 잘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불어 각종 정보와 미디어에서 자신만의 분별력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고, 창의성과 함께 비판적인 사고력과 시민정신이 항상 깨어 작동하게 해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학교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1907년 미국 전국교사협회에서 했다는 한 교사의 발언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요즘 학생들은 잉크에 너무 의존한다. 칼로 연필을 깎는 법을 잘 모른다. 펜과 잉크는 결코 연필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만년필이 나왔는데도 연필만을 고집한 편협한 생각은 전통이 아니라 퇴행이다. 시대의 변화를 거슬렀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으며, 실용성과 학생의 편의를 외면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연필에 연연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초중교 교사 340명에게 물어봤더니 뉴스 리터러시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교육은커녕 이런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각각 39%와 29%나 되었다.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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