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모르면 숙제조차 못 합니다.” 이제는 과장이 아닙니다. 2025년 카피리크스Copyleaks가 발표한 ‘AI in Education Trend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의 90%가 AI를 학업에 활용하고 있으며, 이 중 약 75%는 지난 1년 동안 AI 사용이 더욱 늘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디지털교육위원회(Digital Education Council)의 조사에서는 16개국 대학생의 86%가 이미 AI를 사용 중이며, 과반수는 매주 정기적으로 이를 활용한다고 답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AI 활용이 Z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카피리크스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응답자는 45~60세의 성인 학습자(43.9%)였으며, 이어 30~44세가 27%, 18~29세는 29%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신입생만의 도구가 아니라 중장년층 재교육과 평생학습의 필수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은 아이디어 구상, 개요 작성, 초안 생성, 복잡한 개념 이해 등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시간 절약, 성과 향상, 이해도 증진을 주요 효과로 꼽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학부생 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이 AI를 과제 수행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글쓰기 개선과 사고 정교화에 특히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미국 내 공과대학 4,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 조사에서는 STEM 분야에서 AI 사용이 더욱 활발히 나타났고, 학생 다수가 학교의 AI 정책이 시대에 뒤처졌다며 커리큘럼 반영을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MIT, 애리조나주립대, 오하이오주립대 등은 AI 활용 교육과정, 교수 훈련, 학내 가이드라인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기술 수용을 넘어 ‘AI 유창성(AI Fluency)’, 즉 AI를 비판적이고 책임 있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대학 교육의 핵심 역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MIT 오픈 러닝 부학장 디미트리스 베르츠시마스Dimitris Bertsimas는 “드물게 등장하는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은 모든 학생과 노동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만큼 필수적이다. AI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대학이 취해야 할 전략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전공과 무관하게 모든 학생이 이수할 수 있는 AI 기초 교양 과목을 개설해야 합니다.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는 ‘삶과 사회를 위한 AI의 필수 요소(The Essentials of AI for Life and Society)’라는 융합형 과목을 운영하며, 기술적 기초뿐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영향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 교수 역량 강화가 필요합니다. 교수가 AI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학생을 지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는 2029년까지 모든 졸업생의 AI 유창성 확보를 목표로 교수자 연수와 과제 설계 워크숍을 운영 중이고, MIT는 2026년부터 맞춤형 학습 플랫폼 ‘Universal AI’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셋째, 대학 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학사, IT, 학생지원, 평가 부서가 협력해 명확한 AI 정책과 도구 승인 절차, 정기 업데이트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MIT는 Responsible AI for Social Empowerment & Education (RAISE)라는 캠퍼스 차원의 대화 구조를 통해 조직적 대응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넷째, 기술 형평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AI가 새로운 문해력이라면,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애리조나주립대(ASU)는 AI 플랫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전 교직원에게 AI 접근권을 제공하며, 이를 단순한 형평성 차원을 넘어 전략적 투자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학의 현실은 다릅니다. 미국과 세계 각국의 대학이 AI 기반 학습 환경을 빠르게 구축하는 사이,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AI 활용 금지’만을 반복하거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교수와 학생을 방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AI로 글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개념을 학습하고 있지만, 대학은 여전히 “그건 부정행위야”, “교수님 재량이지”라는 낡은 잣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식 교육과정은 전무하고, 교수 연수는 드물며, 학내 정책은 부재한 상태입니다.
AI를 외면하는 대학은 결국 학생의 미래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AI는 이미 학문과 노동,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대학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더 이상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박제된 제도로 전락할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대학은 잊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AI 유창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소양이며, 지금 이 순간 대학은 반드시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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