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AI 에이전트와 함께 성장하는 세대입니다. 이들은 숙제를 할 때 ChatGPT나 스마트폰의 음성비서를 불러 도움을 청하고, 친구와 다툰 날에는 AI에게 위로를 구하며, 새로운 게임이나 관심사에 대해 질문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단순한 ‘도구 활용’일 수도 있지만, 이 변화는 아이들의 사고방식, 정서 발달, 학습의 방향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AI는 아이들의 정서적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의 AI는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이들의 정서적 파트너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지치고, 감정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며, 때로는 실망을 안기기도 합니다. 반면 AI는 늘 일관된 톤으로 반응하고, 끝없이 친절하며, 거절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아이들은 AI에게 더 많은 것을 털어놓고, 인간보다 AI를 더 편안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 세계는 비일관적이며, 인간관계는 감정의 오차 범위 속에서 성장합니다. 감정의 복잡성, 오해와 화해, 충돌과 조정의 경험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있어 필수적입니다. 과연 AI는 이러한 ‘사회적 마찰’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AI와의 상호작용, 배움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놀랍도록 정교한 답변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낮은 맥락(low-context)’에서 작동합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언어적 표현에는 능숙하지만, 문화적 암시나 비언어적 신호, 장기적 관계 맥락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AI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깊이 사고하기’보다는 ‘빠르게 얻기’에 익숙해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질문의 중요성이나 불확실성 속에서 스스로 탐색하는 경험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공부의 방식만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일 수 있습니다.
부모와 교육자의 역할,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아이들이 AI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도록 지도할 것인가, 어떤 대화를 부모와 함께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AI를 인간과의 관계를 보완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AI에게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AI는 그렇게 말했구나. 그런데 실제로 그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너는 어떻게 느꼈어?”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AI가 준 답을 ‘고정된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그 뒤에 숨어 있는 가치와 맥락을 함께 탐색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학교와 가정은 AI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을 일상적으로 포함해야 합니다. ‘AI는 틀릴 수 있다’, ‘AI는 편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할 수 있다’, ‘누가 이 AI를 만들었고,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비판적 질문은 더 이상 대학 수준의 윤리 토론이 아닙니다. 초등학생에게도 필요한 ‘디지털 시민성’의 일부입니다.
기술을 넘는 교육, ‘인간됨’의 회복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입니다. AI는 아이들의 곁에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아이를 길러내는 것은, AI가 줄 수 없는 기다림, 실망, 감정의 복잡성을 함께 겪어주는 인간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가 AI와 함께 살면서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는 첫 번째 세대의 부모이자 교육자입니다. 그 책임은 무겁지만, 바로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던지는 질문 하나, 대화 한 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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