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지만, 독일과 같은 국가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이들이 많았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마스크 상태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코로나19로 죽은 사람을 하나 건너 아는 정도일 때가 많'(24p)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이 책의 저자인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의 <얼굴 없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외출금지령까지 내렸던 이탈리아에서 그는 ‘새로운 전체주의를 넘어설 새로운 파시즘이 들어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나 ‘질병 감염에 특히 쉽게 노출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라는 요구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는 것은 한마디로 역사의 슬픈 코미디’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파시스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약자들을 위했고, 민주주의자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돌봄과 배려의 계율을 내팽개쳤던가? 팬데믹 와중에 연대와 의무를 저버린 이들은 이 세상을 자기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해석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아무 모델이나 끄집어낸다. 이렇게 해서 국가-조치-명령-기본권 제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리가 느닷없이 <파시즘>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그와 함께 불안하던 마음이 빠르게 진정된다. 이제 그들의 관념 세계는 불분명하던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구호와 슬로건으로 가득 찬다. 모두 판타지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28p

 

이 책은 독일 슈피겔 종합 베스트 1위, 24주 연속 10위 안에 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마스크 시대의 정치학’.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팬데믹 2년, 국가의 역할과 시민의 의무를 묻다’.

우리와는 다른 독일 이야기여서 뭐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열심히 마스크 쓰고, 부스타까지 맞고 있으므로. 그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입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나’보다 ‘우리’를 앞세웠던 공동체문화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국가가 통제하는 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이 우리와 다른 대처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것. 대중적인 철학자가 나서서 철학적인 언어로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시민은 시민의식을 갖고 의무를 다하라고 외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을까. 프레히트는 앞으로 닥칠 기후 위기야말로 함께 연대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마스크 시대, 그리고 정치의 시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책 속 구절들.

오늘날 우리 삶은 수많은 규정과 세금으로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대신 국가가 평소에 시민에게 강요하는 의무와 요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적다. 그건 강제로 전쟁에 끌려 나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과거의 살인적인 의무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지금의 국가는 다르다. 나의 건강과 노후를 대비할 사회적인 틀을 제공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힘껏 지원하기도 한다. 106-107

사람들은 이제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로 여긴다. 만일 내가 기대한 대로 국가가 해주지 않으면 나는 국가와의 내면적 계약을 파기하고,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친다. 그로써 일부 사람은 역사와 사회를 망각한 채 국가가 세금 납부 같은 의무를 시민에게 부과하는 행위를 파렴치하게 여긴다. 그러나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르길 좋아하는 급진 자유주의자들은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바란다. 세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소방대, 공공병원, 그리고 대학까지 실시되는 무상교육이 없고, 거기다 가장 기본적인 수도와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나라에서 정말 살고 싶은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예멘이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가 그들에게 천국일 것이다 107-108p)

따라서 오늘날 급진 자유주의는 오직 한 가지 형태로만 존재한다. 국가로부터 좋은 보살핌을 받는 시민들이 오히려 성을 내며 소아병적으로 반항하고, 고의로 공익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에 대한 저급한 근거로서 말이다. 한마디로 의심에 사로잡혀 공연히 투정이나 부리는 인간들의 사치스런 행동이다. 109

탈의무의 가장 깊은 뿌리는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라고 끝없이 가르치는 변화된 우리 경제다. 133

사회적 거리두기는 순수 공간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개인 심리학과 사회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거리를 두면 많은 것들이 거리감을 두고 관찰된다. 물론 그런 거리는 남들을 감염시키지 않으려는 걱정과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기존의 공감 부족을 촉진할 수도 있다. 138
[출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의무란 무엇인가>|작성자 생각을담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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