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가 개발자 채용에서 ChatGPT 사용을 허용한다는 소식이 IT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기업들이 AI 사용을 금지하는 가운데 나온 ‘파격적’ 결정이다. 언론은 이를 ‘혁신’으로 포장했고, 업계는 시대 변화에 발맞춘 진보적 시도라며 박수를 보냈다.
정말 그럴까? 겉으로는 혁신적으로 보이는 이 변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찰 없이 기술을 맹신하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컬리 관계자는 “AI 활용 의지도 개발자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런 논리의 위험성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우려스럽다.
교육업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코딩 교육 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고, AI 활용법 강의 비중을 90% 이상으로 늘렸다. 강사들은 “개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결국 시장의 흐름에 굴복했다. 대치동 학원가까지 ‘AI 코딩 특강’을 앞다퉈 신설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수용이다. 사회적 논의도, 기본 교육에 대한 성찰도, 철학적 고민도 없다.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다.
AI는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가장 큰 착각은 AI가 지적 능력을 ‘대체’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AI는 어디까지나 똑똑한 사람의 생각을 더 빠르게, 더 넓게 확장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AI는 멍청한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 간단한 진실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위에 정책과 교육과정이 세워지고 있다.
ChatGPT로 코딩 문제를 해결하면 실력이 향상됐다고 착각한다. AI가 대답해주면 문제를 ‘풀었다’고 우긴다. 이쯤 되면 AI가 아니라 인간 쪽이 더 자동화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샘 올트먼 OpenAI CEO가 “AI 코딩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AI 성능은 향상됐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생산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특히 교육과 채용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비판적 수용은 심각하다. AI 사용을 허용한 시험이 곧 혁신이라고 치켜세워지고, 그에 따른 사회적·도덕적 함의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생산성’이란 이름 아래 생각하는 노동은 사라지고, 대신 ‘검색 능력’만 남는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AI가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한 퇴행이다.
2월 로이 리라는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이 AI로 아마존 코딩 테스트를 통과했다가 채용 취소와 정학 처분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업계는 이를 ‘커닝’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같은 행위가 ‘역량’으로 포장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기준 변화가 과연 합리적일까?
기술이 드러내는 우리의 민낯
이런 흐름은 단지 기술 수용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천박한 기술 인식, 교육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비판 없는 추종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을 때도 우리는 늘 기술을 ‘맹신’했고, 그 결과는 언제나 ‘혼란’이었다. 지금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기술은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지금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은 다름 아닌, 성찰을 포기한 사회의 허상이다.
똑똑해져야 할 것은 AI가 아닌 인간
업계에서는 개발자 채용 시장이 양극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AI를 잘 다루는 개발자의 몸값은 올라가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개발자는 도태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중요한 것은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AI를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과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AI 시대가 문제인가? 아니다. 문제는 늘 인간의 무지와 태도에 있었다. 똑똑해지는 것은 AI가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컬리의 시도 자체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무조건 ‘혁신’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인지, 진정한 역량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AI는 분명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인간이 먼저 똑똑해져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를 맞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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