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계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교통방송 라디오 진행자 김어준의 발언은 전통 매체의 영향력을 훨씬 능가한다. 요즘 한국 언론을 말할 때 이 둘을 빼놓을 수 없다. 언론 불신 상황과 특유의 개인적 역량이 작용한 탓일 게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환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뉴스의 독과점 시대는 디지털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며 종말을 가져왔다. 대신 저널리즘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인터넷과 유투브, 소셜 미디어만으로도 뉴스와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뉴스와 정보를 대하는 수용자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엄숙하고 가치중립적인 것보다 빠르고 쉽게, 개성을 담아 흥미를 유발하는 색깔 있는 뉴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념과 정치적 견해를 노골화 하는 콘텐츠를 찾아 한쪽으로 몰려 열광하는 풍조도 생겼다.

허위 조작 보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나 논란을 유발하는 김어준의 발언에 대한 호불호 또는 옳고 그름은 각자 판단할 몫이다. 그것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법안과 인물, 전혀 성격이 다른 이 둘의 부각을 통해 전통 미디어의 현실과 수용자의 선택 기준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디지털의 흐름은 오랜 기간 기득권을 유지하던 레거시 미디어의 생태계를 뒤흔들었지만 대부분 새로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수입원이 줄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기계적 공정성이나 객관적 중립적 시각은 전통적으로 미디어의 절대 명제였다. 지금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계에 부딪쳤다. 이념과 정치, 종교와 인종, 젠더 갈등과 성적 취향 등 모든 게 열려있는 사회에서 중간의 잣대만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에는 언론자유, 공정보도, 품위유지, 정당한 정보활동,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오보의 정정, 갈등 차별 조장 금지, 광고 판매 활동의 제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 같이 옳고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개방된 정보 환경 등의 시대 변화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당파성을 배제한 보도와 정확성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공영라디오 NPR이 7월 초에 새로운 윤리 지침을 공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다양한 목소리, 특히 소외될 위험이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지 않고서는 진실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한 점이다. 그리고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자원과 기술을 총동원해 정보를 검증하고 완벽한 진실이 전달되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NPR 캡처

NPR은 온라인 부분을 따로 떼어 정확성을 언급한다. 확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독자들에게분명히 알려주어야 하고, 소셜 미디어의 정보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며 증거를 찾아야 하고, 때로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를 아예 차단하는 게 독자들에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소스가 약한 루머를 전하려는 것은 아닌지, 가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도 적절한 경고와 함께 투명한 방식으로 전달하는지 항상 자문해보라고 요구한다.

NPR은 과거 윤리 지침에서 기자들에게 집회와 행진, 공개행사 참여를 전면 금지하고, 논란이 있거나 극단으로 나뉜 주장을 옹호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하지만 새로 개정된 내용은 개인의 소셜 미디어와 실생활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옹호하는 활동의 참여를 허용했다. 소셜 미디어가 일상인 세상에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의 저널리시트라 해도 시민으로서 개별 입장 표명은 당연하다는 뜻이다.

디지털 시대는 가짜뉴스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몸집을 키울 인프라를 제공했다. 괴물처럼 커진 가짜뉴스는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편파성을 낳고, 양극화를 조장하고, 음모론을 양산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성 언론조차 조회수에 목말라 하며 베끼기와 따라하기를 하기도 한다.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수용자도 결국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해법은 팩트로 승부하는 정공법뿐이다. 수용자도 같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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