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두꺼운 안내 책자나 지도는 해외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니는 여행객을 찾기 힘들다. 기술의 발전은 모바일 기기 하나로 여행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행지 정보 검색과 길 찾기는 물론 카메라와 통역까지 가능하고, 굳이 여행사나 가이드에 의존하지 않고도 숙박이나 교통편을 예약할 수 있다.

디지털 기기는 여행에 필요한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나만의 맞춤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상을 떠나 온전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자 하는 게 여행의 본래 목적이라고 한다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은 떠났지만 스마트폰은 여전히 일상의 삶에 머무르게 한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소셜 미디어로 일일이 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나누고, 화면에 빠져들다 보면 여유와 생각이 깃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연결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몸의 일부가 된 모바일 기기를 떼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라도 손에서 벗어나면 분리불안 증세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 DC의 오프 더 그리드(OFF THE GRID)라는 업체는 스마트폰 없는 새로운 여행 방법을 제안한다. 여행객들은 스마트폰을 맡겨놓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하거나 여행기간 중 3번만 확인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방법 3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카드 홈페이지 캡처

여행객들에게는 비상 연락망이 저장되어 있는 특별한 전화가 지급된다. 여행 멤버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으며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는다. 여행지 안내 책자와 지도, 아날로그 시계를 나눠줘 여행객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게 한다. 카메라는 각자 지참해야 한다.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단순히 보는 관광이 아니라 체험과 견학 위주로 한다. 이 업체는 리스본과 프라하, 바르셀로나 등 세계 유명 도시의 리조트와 계약을 맺고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인터피드 트래블(Intrepid Travel)이라는 또 다른 업체는 칠레의 파타고니아 트레킹과 몽골, 쿠바 를 여행하는 3개의 디지털 디톡스 상품을 출시했다. 여행중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고, 소셜 미디어 활동도 금지된다. 자카다(JACADA)라는 업체는 아예 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는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모바일 기기에 사로잡힌 문화와 꺼놓기를 강요당하는 현실을 벗어나게 해준다고 홍보한다.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디지털 디톡스 산업이 보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연결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의 진화는 끊기 힘든 연결의 고리를 만들며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자로 잰 듯한 정확성과 분초를 다투는 빠름과 신속성을 우선하는 세상은 스스로를 고립시켜야만 할 만큼 느림의 여유와 재충전을 요구하게 만든다. 여행사들이 이 흐름을 시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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