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이 노동 현장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상황이 이제 가시권에 들어왔다. 첫 타겟은 은행의 콜센터다. 미국 IBM과 손잡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인공지능 ‘왓슨 (Watson)’을 들여와 은행 콜센터의 상담사 보조로 취업시키기로 하고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영업에 나섰다. 콜센터에 걸려오는 불만이나 문의사항 같은 고객의 전화 내용을 ‘왓슨’이 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복잡하고 방대한 금융정보도 모조리 파악해 상담사에게 답변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띄워주면 상담사는 이것을 고객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음성인식을 갖춘 채팅로봇 형태의 ‘왓슨’은 현재까지 96%의 정확도로 실생활에서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한국어 학습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전해준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는 인간 상담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차고 앉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왓슨’의 활동무대로 은행 콜센터를 선택한 것은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의 입장과 비슷한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확장성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은행과 카드, 증권, 보험 같은 금융기관은 물론 대형 유통업체와 병원, 통신사, 홈쇼핑, 제조업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운영되는 콜센터는 고객과 소통하는 기업의 필수적인 조직이지만,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그 동안 늘 비용절감의 1순위였다. 아웃소싱을 통해 상담사를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인건비가 싼 곳을 찾아서 콜센터를 옮기기도 했었다. 인터넷 뱅킹이 확산되면서 고객을 직접 맞이하는 금융권의 창구 직원들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봉급을 받지 않고도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고, 고객의 감정과 심리까지 파악해 응대하며, 빠른 서비스까지 가능하다는데 기업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콜센터 종사자는 18만명, 이들이 머지않아 생존의 위기에 몰리고, 금융권 등의 창구 노동자까지 합치면 110여만명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이미 모든 산업 분야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인공지능 로봇이 은행 창구나 커피전문점에 배치돼 사람처럼 고객을 상대하거나 경비를 서고, 거대한 물류창고에서 빠르게 물품을 찾아 배송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물론 법률가나 의사보다 더 분석적이고 정확한 업무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로 무장하고 천문학적인 데이터 자료들을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무한의 영역 확장을 통해 사람을 대신할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물론 정신노동과 감정노동의 영역까지 대체가 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그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 동안 막연하게 느껴지던 대량 실업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5년 안에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경고가 결코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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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왓슨과 관련된 비지니스를 알리는 IBM의 홈페이지, 출처:ibm.co.kr>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내주는 우선 대상은 우리 사회의 상대적인 약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이 국내에서 콜센터 상담사를 겨냥한 그 이면에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신분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보호막이나 조직을 갖추지 않은 비정규직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큰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해고에 따른 비용부담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셈법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다.

인공지능 시대에 발을 들여놓은 지금 이 놀라운 변화의 혜택이 노동해방이나 편의증진을 통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나 개인 간 부의 독점과 불균형,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하며 산업현장과의 접목을 구체화하고 있는 곳은 구글이나 IBM,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누구나 다 아는 거대 IT기업들이다. 친숙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로 각인돼있지만 상업성과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기본 속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여기에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천문학적인 다양한 정보 내용을 독식하며 나날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영향력이 정보와 데이터가 집중되는 이들 거대 IT기업들과 이들과 연계된 업체들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혜택이 어디로 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심각한 것은 이런 거대한 흐름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역할과 고용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경쟁 대열에 뒤쳐지지 않도록 산업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고, 업계는 흐름을 쫓아가기 바쁜 현실이다. 인공지능의 안전성이나 윤리문제를 개발자의 손에만 맡겨놓아야 할지, 산업현장에서 채택되는 인공지능의 업무 성격과 기준, 한계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인공지능을 탑재한 킬러로봇 개발에 반대하는 세계 석학들의 목소리만 있었을 뿐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혜택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눠져야 한다. 일자리를 내주고 실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근 들어 일자리 나누기나 로봇세 도입, 기본소득 권리 인정 같은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원론 차원에 그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으로 얻는 소득과 이윤이 거대 IT기업이나 제휴업체에 일방통행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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